(아처) 이소라살인사건

작성자  
   achor ( Hit: 10546 Vote: 49 )
홈페이지      http://achor.new21.net
분류      fiction


『칼사사 게시판』 27469번
 제  목:(아처) 이소라살인사건                         
 올린이:achor   (권아처  )    98/02/01 21:16    읽음: 44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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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MBC-FM을 켜 놓고 있는 나로서는
모든 DJ에 대해서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곤 하는데...
(그들은 말이 너무 많다. 음악을 듣고 싶단 말이다)

그중 특히 이소라는 거의 나를 미칠 지경에 빠트리곤 한다. --;
참으려 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역겨운 목소리와 말투!

이대로 가다간 틀림없이 내가 미칠 것만 같아서
난 이소라를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다.



     1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밤이다. Radio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자
면 난 삶의 행복함을  느끼곤 한다. 까만 밤, 나 이외에  아무도 없는 내 
방에서 홀로 누워 많은 잡념을 할 수  있는 시간! 난 유라와 잡념만이 내 
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아. 난 부와 그리 인연을 타고  태어난 사람은 아닌가 보다. 이미 22살이 
되었음에도 아직  이렇게 월 10만원  짜리 조그만 단칸방에서  TV도 없이 
단지 한 채널만  들을 수 있는 Radio가 내  문화생활의 전부이니 말이다. 
그것도 한 번 끄면 다시 잘 켜지지도 않는 그런 고물 Radio!

사실 그건 내게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Radio를 듣는다고 말
은 했지만 단지  귀로 들어올 뿐이었다. 이미 내 머리는  잡념에 깊이 빠
져들어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내 잡
념이 어느 정도냐  하면, 한 번은 늦은 밤 유라가  내 방을 찾아왔었는데 
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도 못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게도 커다란 약점이 있다.  바로 매일 23시 30분에서 24시 
사이에는 꼭 잡념으로부터  퉁겨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때 바로 이소라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아쉽게도  3분만 더 
버텼으면 그녀의 목소리를  안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잡념의 세계로
부터 벗어났을 때 시계는 정확히 23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제길! 내 심리상태는 급변한다. 시제와 더불어...

"이번 주 공개방송은 경북 상주에서 한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아. 또 듣고 말았다. 그 역겨움의  압권, '드려요~오'! 이젠 정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내가 참아  온 것만으로도 난  신께 면죄부를 
받을 당당한 권리가  있다. 나처럼 인내심이 약한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
안 이렇게 참아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안된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의 그 살  떨리는 목소리와 
말투를 내 청각이 감지하게 된다면, 난  청각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
에 위치한 좌우 양 뇌에 큰 무리를 일으켜 틀림없이 미쳐 버릴 것이다.

내가 미치던지, 아니면  그녀를 죽이던지 난 양자택일해야만  한다. 그렇
지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간에  이소라, 그녀는 조금의  반발도 할 
권리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건 그녀가 쌓은 업보이기에...

물론 그것이 그녀의  전적인 책임은 아니라는 주장에 나  역시 공감은 한
다. 그 따위  DJ를 쓰는 담당 PD나 혹은 그녀의  소리로부터 애착을 느낀
다거나 재미를 느끼는,  정신병원에서 심각히 검진을 고려해  봐야 할 몇
몇 무조건 새롭고 특이한 것만 찾으려는  골빈 인간들 역시 책임이 있다. 
애당초 그녀를 DJ로  쓰면 안 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천사의 목소리보다 
아름다운 내 여자친구, 유라를 DJ로 쓸 것이지... *^^*







     2

이윽고 난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미쳐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도 내 결정에  이의를 다른 사람이 있다면 내가  미칠 경우를 생각
해 보라. 내가  미친다면 우선 나만 바라보며 살고 있는  내 유라는 어쩌
란 말인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결코 그녀를 슬프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리고...

아, 그러고 보니 그 외에는 내가 미쳐서 안 될 특별한 이유도 없군.

어쨌든 그렇게 결정한 것이니 따지지 말기를  바란다. 난 단순해서 내 꼴
리는 대로 할 뿐이란 말이다.
     3

난 상주행 시외버스 표를  산 후 오징어 한 마리와 스포츠  신문 한 부를 
준비한 채 버스에 올랐다. 그녀를 죽이기 위해  잘 드는 칼 한 자루 역시 
빼 놓을 수 없었고.

버스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한 승객은 대략  5명 정도. 
그러기에 처음 계획한 살인 때문에  조금은 흥분되어 얼굴색이 변해 있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 스포츠 신문을 조금 보다가 읽기를  관둬 버렸다. 하필이면 그 신문에 
이소라가 나올 게 뭐람. 제기랄. 그녀의 얼굴에 칼을 꽂으려다 말았다.

난 잠을 청했다. 긴장 때문에 잠이  오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무엇 하나 할 것도 없었다. 비록 내가  가방끈이 짧긴 했지만 이럴 땐 마
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았다.

어느새 잠들었는지 웅성거리는 소리에  일어났을 때는 이화령휴게소에 버
스가 정차하여 있었다.

문경세제를 거쳐 이화령고개에 위치한 그곳은  고지로 참 전경이 좋은 곳
이었다.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었고,  관광객을 위해서 친절
히 망원경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배가 조금 출출하던  차에 우동이나 한 그릇 먹을  생각에 식당으로 향했
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는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세상에 그토록 아름다운 여자가 오징어를  파는 곳은 이곳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내  사랑 유라에 필적할 만한  미모라고 한다면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우동을 먹고 꼭 오징어를 사리라고 결심을  한 후 식당으로 들어갔다. 작
은 규모의 조촐한 곳이었는데 일회용  그릇에 담긴 우동은 1500원이었다. 
평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내게  한 끼에 1500원이면 거금이었지만 지
금 살인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돈 1500원은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
았다.

맛은 별로 였지만 배는 채울 수 있었다.  우동을 다 먹고 난 후 계획대로 
난 오징어를 사러  갔다. 그녀는 역시 아름다웠다. 내가  우동을 먹고 온 
사이에도 그 아름다움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아름다운 것
이다. 과거에 난 첫눈에 반해 많은 실수를 저질러 왔으니...

"오징어 한 마리 주세요" 난 주문했다.
"2000원입니다" 그녀는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내겐  그 사무적인 
그녀의 목소리마저  티없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귓가에  이소라 목소리
만이 맴돌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녀에게 2000원을 내면서 난 물어 봤다.
"저기 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나요?"
그냥 이대로  헤어지기엔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는  여자였다. 조금이라도 
대화해 보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고작 '화장실'이었던 게다.

"저쪽으로 돌아가시면 돼요"  그녀는 역시 시선을 오징어에  집중시킨 채 
사무적으로 내게 대답해 주었다.

"아 예. 고맙습니다"  난 오징어를 받고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화장실을 
향해 갔다. 특별히 화장실을 가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혹시나도 내 뒷모
습을 보고 있을 지 모르는 그녀  앞에서 실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
다.

화장실 가는 길은 마치 무슨 산길을  걸어가는 듯 했다. 외길로 꼬불꼬불 
거리는 길이었고, 게다가 휴게소 본관으로부터  떨어져 길 주변엔 수풀이 
우겨져 있었으니 말이다. 아직도 이런 누추한 화장실이 있나?

최근에 단장한  것 같은 휴게소를 보면  화장실도 잘 꾸며 놨을  것 같았
다. 그런데  이게 뭔가! 설마 그녀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장난을 친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리 가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난 사랑에  있어서도 여자가 나를 배신하더라도 
난 배신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순박한 청년이니 말이다.

한참을 걸어가니 조그만  창고 같은 허술한 건물이 하나  나왔다. 흠. 상
당히 난해한 곳에  화장실이 위치해 있군. 난 툭 치면  부서질 것만 같았
던 나무로 된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 때부터 상황은 역전된 것이다.










     4

그럼 잠시 상황을 설명해 주기로 하겠다.

난 계획대로 화장실로 들어갔고, 거기엔  낯익은 여자 2명이 있던 것이었
다. 혹시나도  남자가 왜 여자화장실에  들어갔냐는 중요치  않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 몰라 우선 이 점부터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 곳은 문이  하나였고, 또 특별히 '여성전용'이라는  문구도 없었단 말
이다. 다시  말하자면 난 거기가  여자화장실인지 모르고  들어갔던 것이
고, 또 난 여자화장실이나 들락날락하는 변태는 아니다.

어쨌든 그 때  상황은 한 글래머가 피  뭍은 칼을 들고 서  있었고, 다른 
한 여자는 양손과  양발이 밧줄로 묶여 바닥에 쓰려져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순간 난 어찌나  당황했던지 내가 칼을 갖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있었
던 게다. 내가 낯선 이방인이 되어 그  곳에 들어가자 그 서 있던 글래머
는 고개를  돌려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다짜고짜 내 뺨을  때린 것이었
다. 이런 황당한...

그런데 그 한  대의 따귀가 얼마나 셌던지 난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 보
니 나 역시 온 몸이 밧줄로 묶인 채 바닥에 쓰려져 있던 것이었다.

이게 지금까지의 상황인 거다.



     5

내가 깨어나자 그  글래머는 미소를 지으며 '밤의  디스크 쇼 이소라입니
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헉! 그 아이러니컬한 미소  속에 보여진 그녀
의 얼굴은 바로 이소라였던 게다. 처음에  너무 당황해서 알아볼 수 없었
나?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목소리가  느끼하다는 것을 느
낄 수 없었다.

난 고개를 돌려 옆에 피 흘리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런! 코가 잘
려져 나가 잘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유라였다. 이게 어
떻게 된 거란 말인가!

그녀는 실실 미소를 지으며 유라에게 물었다.
"이번엔 어디를 잘라 줄까?"

틀림없이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긍정적인 웃음이  아니었다. 나와는 
달리 전혀 긴장하거나 초조해 지지 않은  채 단지 그 살인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과 같았다. 그 미소는 마치  승자가 패자에게 베푸는 교활한 배
려처럼 느껴졌다. 같이 살인을 계획하였으나  결국은 그녀가 유라를 살인
하게 됐고, 난  묶인 채 그녀의 결정만을 기다려야  하다니... 떠나기 전
에 생각했던  '그녀의 죽음은 그녀의  업보이므로 그녀는  아무런 반발을 
할 권리가 없다'란  문구는 어느새 그 대상을 나로 바꿔  내 눈앞에 반짝
이는 간판처럼 보여지고 있었다.

그녀는 유라에게 다가가더니 유라의 상의를  칼로 찢어 버린 후 브레지어 
끈마저 칼로  당기며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가래침을 
한 번 그녀의  잘린 코 위에 뱉더니 브레지어를 칼로  끊어 버렸다. 유라
의 가슴이 환히 드러나자 그녀는 다시  유라의 유두를 잡아 칼로 왼쪽 가
슴을 단숨에 잘라 버렸다. 마치 두부를 썰듯이 아주 부드럽게...

순간 난 조금  전에 먹었던 우동가락과 오징어 다리가  얽혀 내 위로부터 
거세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절로 내 입은  벌려지면서 갈색빛 내용
물들을 쏟아 내었다. 이게 아니야.

이소라는 그런 나를  힐끗 보더니 내게 서서히 다가와  내 귀를 잡아당기
곤 조용하게 속삭였다.

"다음엔 네 차례야"

다음엔 내  차례라니... 설마 했는데 이젠  조금의 희망도 없이  난 죽고 
마는 것이다. 원체  삶이란 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결을 맞이하
곤 하지만 이건  틀림없이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난  단지 그 오징
어를 파는 여자에게  반해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 가고 싶지
도 않았던 화장실을  간 것뿐이란 말이다. 도대체 왜  상주가 아닌 이곳, 
이 누추한 화장실에 이소라가 있고, 또  하필이면 유라까지 있는 거냔 말
이다. 말도 안 돼! 이건!

유라는 정신을 차렸는지  갑자기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상하게도 그녀의 비명은 지난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은은한 멜로디인 것
만 같았다. 난 그렇게 내 생이 걸려  있는 중요한 순간에 어린 시절의 기
억이 떠올라 다시 잡념 속에 빠지게 됐다.

내가 어렸을 때 지금은 갈라져 따로  각자의 길을 걷고 계신 내 부모님께
서는 빵을 직접 만들어 주시곤 했다.  아버님께서 밀가루와 계란을 잘 반
죽해 놓으시면 어머님께서는 맛있는 빵으로 완성 짓곤 하셨다.

우리 가족에겐 오븐판이 2개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갈라지셨을 때 오븐판
까지 똑같이 나누셨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아마도 앞으로는 필요 없을 
거라고 느끼셨는지 이내  버리셨지만 어머님께서는 그 판을  가지고 가셨
다. 지금도 어머님께서는 그 추억의 오븐판을 간직하고 계실까?

다시 내가 잡념 속에서 빠져 나왔을  땐 유라의 몸은 이리저리 꼬여 있었
다. 그녀의 목에  나 있는 깊은 칼자국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걸 보
면 그녀의  뇌와 운동신경과의 연결통로가  차단된 것  같았다. 그러기에 
유라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소라는 어디선가  들려 오는 희미한  음악에 맞춰 부드럽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가 휘날릴  때 그녀의 살들도 가볍게 떨리
고 있었지만  난 그녀에게서 더  이상 역겨움을 발견해  낼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이 잘못된 상황을 난 바꿔 놔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내 품에는 칼이 있
었다. 어떻게든  이 칼을 꺼내 소라를  찔러 죽이면 게임은  나의 승리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 손과  발은 단단히 묶여 있었고, 또 나  역시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잔인한 광경에 내 의지대로  내 몸을 움
직일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 바꿀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생각대로 실천
하기란 비단 지금뿐만 아니라 언제나 내겐 힘든 일이었으니...

이제 게임을 끝낼 생각을 했는지  소라는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오
기 시작했다. 유라는  곧 일어날 상황을 모두 아는 양  온 몸으로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꼭두각시  인형처럼 질서가 없는 몸의 
떨림이었다. 유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평소 아름다
웠던 유라의 목소리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지독한 괴성을  지르며 흐느꼈
다.

"참 느끼한 목소리군"
소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오른손 검지로 유라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유
라의 눈에서 하얀 액체와 검붉은  액체가 뒤섞여 흘러나올 무렵에는 그녀
의 흐느낌도, 비명도 모두 끝이 났다.

소라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이  그 날카로운 칼을 다시 집어들더
니 유라의 왼쪽  눈을 도려내었다. 꼭 만화에서 보던  모습 같았다. 커다
란 사탕처럼  생긴 유라의 눈알은  순결한 하얀색이었다.  소라는 그것을 
집어들더니 입에 넣곤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내 귀에서는  '다음엔 네 차례야'란  말이 반복되어  플레이되고 있었다. 
유라가 죽었구나. 난 내 모든 것이었던  그녀를 지켜 주지 못했고, 또 나
까지 죽게 되었다. 그래.  내 사랑 하나 지켜 내지 못한  내가 무슨 염치
로 이 세상을  산단 말인가. 깨끗이 죽자. 내겐  유라가 있는데 잠시나마 
오징어 파는 여자한테 반했던 게 잘못이야.

난 죽을 각오를 하면서도 몰려오는 공포를  떨쳐 내기 힘들었다. 난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노력했다.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도, 유
라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도... 이제 모두 내겐  어떤 의미가 아니라고 
내게 말을 하였다. 나 같은 의지박약은 죽어야 해.

소라는 유라에게서 더  이상의 재미를 못 느끼는지  내게 다가왔다. 무척
이나 담담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음에도 그녀의  칼끝에 묻어 있는 붉은 피
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내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는 칼로  싹둑 베어 버렸다.  그건 마치 
다음엔 목을 잘라 버리겠다는 복선 같았다.

순간 내 모든  머리카락을 주어도 좋으니 제발 목숨만을  살려 달라는 심
정이 되었다. 그러나 난 이내 정신을 차렸다. 난 죽어야 한다.

소라는 내 얼굴을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처박고는 칼을  내 목에 들이대
었다. 그건 성욕이  아니었다. 단지 어머님 품으로 이제  가는 것만 같은 
그런 따뜻함이었다.

그녀는 살짝  한 번 칼을 이동시켰다.  그러자 내 목에서는  가늘게 줄이 
가더니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끝내 줄까?  내게 유라와 섹스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네가 가
진 두 가지 물건들 중 하나씩만 갖는 정도로 끝내 줄께"

난 유라를 사랑한다. 죽은 그녀와 섹스를  한다는 것은 그녀에 대한 모욕
이었다. 난 차라리 죽음을 택할 지언정  그녀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는 않
았다. 내가 가진 두 가지 물건들은 뭐가  있을까? 눈, 귀, 손, 발, 고환, 
유두, 신장... 그러고  보니 왜 굳이 2개만을 줬을 지  모르는 많은 것들
이 내 몸에는  붙어 있었다. 이런 씨팔! 그냥 죽여  버리란 말이야!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생각뿐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그냥 고통없이 한  번에 죽여줄게. 넌 귀여운 꼬마니까. 
난 너 말고도 죽일 많은 사람들이 있거든"

소라가 칼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1초, 아니 눈  한 번 깜짝거리면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나.
     6

이건 기적이었다.

드디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소라의 처분만을 기다
리고 있을  때 그 부셔질 것만  같았던 문이 정말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소라가 문을  쳐다봤을 때 한 남자가  파란 상,하의를 입고  빨간 망토를 
걸친 채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빨간 팬티를 바지 위에다 입긴 했지만...

"유희열의 FM 음악도시입니다"
그 남자는 이렇게  외치더니 눈에서 파란 광선을  소라에게 쏘았다. 그러
자 소라는 잠깐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쓰러졌다.

난 그  파란 남자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한 채 그를 밀치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무조건 달렸다.  틀림없이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아무 생각
도 하지 않은 채 난 그냥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달린 후  난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내 방인 걸  깨달았다. 뭐가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방에서는 여전히 Radio가  들려 왔다. '유
희열의 FM 음악도시입니다'란 소리와 함께...






     7

난 이내 쓰러져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내 목에는  칼자국이 남아 있
었다. 갑자기 극도의 갈증이 나서 부엌으로  나가 보니 유라가 그 소라의 
칼을 들고 두부를 자르고 있었다.

"일어났구나. 자고 있어서 안 깨웠어. 내가 맛있는 두부찌개 해줄게"









평소 이소라의 그 느끼한 목소리에 지친 내가
어떻게 그녀를 죽일까 고심하다
설날 상주 가는 차안에서 생각했던 이야기이다.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난 이걸 2월 1일에 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난 항상 이런 얘기는 1과 2로 조합된 날에 써 왔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굳이 그 확신을 따를 생각은 없었다.
단지 쓰고 나니 오늘이 2월 1일이었던 것뿐이었다.

처음에 생각했을 때는
이 이야기가 하루키의 단편과 비슷하지 않나 걱정이었는데
막상 쓰고 나니 류의 In the miso soup과 비슷한 느낌이다. --;
처음엔 잠시 동안의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이소라에게 역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게 주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 죽이는 과정의 잔혹함에 더욱 의미를 두게 된 것 같다.

어쨌든 좋다.
나야 전문 소설가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누구를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니
대강 내 꼴리는 대로 살 거다. 푸히~ ^^

참, 많이들 컴퓨터로 쓰면 구성을 제대로 잡지 않은 채 쓴다고 비난을 하던데
허술하나마 대강의 개요를 작성했음을 밝혀 둔다.
그러므로 이 글이 졸작인 이유는 내 후달리는 문장력에 있을 뿐이지,
결코 뭇 비난처럼 구성의 허술함이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 쓰다가 글의 중심이 바뀌는 건 구성의 허술함이 아닌가 보군 ^^;)

어쨌든 뭐 좋은 수가 없을까?
그 느끼한 이소라의 목소리를 안 들을 수 있는 방법!
다른 방송을 듣는다거나 아예 아무 것도 듣지 말라고 말하지는 말고!

내가 변하지 않고, 상대방이 변할 수 있는 방법 말이야! *^^*






                                                            1125-625 건아처

본문 내용은 9,131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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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