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누나 결혼식이 있어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친구가 나
오지 않아 무더운 날씨에 정장 입은 채로 땀흘렸고, 대학로
에 도착해서는 다이어리를 안 갖고 왔다는 걸 발견하여 난감
함을 실감해야 했다. 민석에게 돈을 빌렸으나 한 번도 안 써
본 내 은행카드는 '처리불능 코드번호 705'만 되풀이했다.
대학로에 운집한 조국 모를 동남아인들에 짜증이 났고, 아
침부터 되는 일이 없는 내 운명에 짜증이 났다.
한강에 란희가 혼자 있다는 전화를 받고 한강을 보았다.
강바람은 참 시원했다. 답답한 내 마음을 희석시킬 정도로.
란희와 맥주 한 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들이 와서
집으로 향했다. 오늘 같은 날 떠들썩하고 싶진 않았다.
한강에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여러모로.
3.
사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22시 무렵, Hikari를 돌려보내며 밤하늘 아래서 전화를 걸
었다.
23시에서 24시까지.
찹찹한 목소리로 우리는 어색한 침묵을 흘렸다.
한강에서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전화 속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생애, 처음의 일이었다.
지난겨울, 그 날들이 막연히 떠올랐다.
활짝 웃으며 이야기 나누던 그 시절이...
부활의 '사랑할수록'이 흘렀다.
연속된 담배로 입에 침이 말랐다.
그렇지만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왔었다.
4.
담배를 피며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상은의 '언젠가는'이 들려왔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 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그대로
5.
1999년 6월 27일 23시 30분.
몇 분만 더 지나면
가장 행복해야할 200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