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다. 연신 잠으로 시간을
때웠는데 일어나 눈을 떴을 때 보이는 내 방의 모습이 어쩐
지 어색하다. 아직 내 시야에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불분
명한 바다의 모습만이 들어있나 보다.
텐트 야영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척이나 힘들
었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던 것 같다. 만약 콘도나 민박이었다
면 권태로움의 기억이 스며들어있었을 텐데, 텐트 속에서는
하릴없이 빈둥대는 것조차 매력적인 일이 되어버린다.
세기말 마지막 여름바다의 모습. Eclipse만큼 아름다웠다.
1. 1999년 8월 12일 목요일 제1일
우리는 누구라도 들뜬 마음이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그
렇게 꿈꾸던 바다로 떠나게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왔었다. 텐트 하나 짊어지고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이 여름의 바다여행.
13시 30분 경 성훈, 용민과 서울역에서 만나 동해행 열차
표를 예매한 후 동대문으로 가 스쿠버장비와 그 외 기타 여
러 물품을 구매했다.
19시 30분 경 신림역에서 란희, 성훈을 만났는데, 헉, 성
훈의 텐트는 정말 무거웠다. 성훈과 힘겹게 텐트를 들고 잠
원역에서 미선 만남. 대부분의 준비물은 성훈이 가져왔기에
나와 성훈은 좇빠져라, 고생하고 있었는데 흑, 란희와 미선,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양 달랑 배낭 하나에 옷가지 몇 개뿐.
--;
21시 경 청량리역에 도착하여 롯데리아에 짐을 내려놓은
후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 때 역시 달랑 배낭 하나 들고 온
희진이 왔고, 히죽, 여초. ^^*
한밤의 열차여행은 낭만을 준다. 창 밖으로 보이는 온통
까만 세상에 시간은 잠들어 가고, 희망과 기대, 그리고 졸음
에 겨운 모습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의 표정. 그런 게 여
름, 한밤의 열차여행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자들끼리 떠나
는 팀을 보면서 성훈과 잠시 아쉬워했다. --+
2. 1999년 8월 13일 금요일 제2일
4시 30분 동해역에 도착한 우리는 경원을 기다렸다. 해안
에 위치한 낯선 열차역. 그곳에 우리가 있었고, 그곳에서 우
리의 세기말 마지막 여름여행이 시작될 생각에 우리는 들떠
있었다.
가까운 슈퍼로 가서 식료품을 준비했고, 라면으로 가볍게
배를 채웠다. 경원이 도착한다던 시간이 되었는데 오지 않아
우선 우리끼리 노봉해수욕장으로 출발했다. 5명이서 짐을 모
두 싣고 택시 한 대로 가느라 좁아 죽는 줄 알았다. --;
노봉해수욕장은 정말 썰렁하였다. 애초에 인적이 드문 조
용한 바닷가를 원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곳엔 여름의 젊음
이 없었다. 겨울바다를 연상할 만큼 한가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망상해수욕장으로 이동.
망상해수욕장에 자리를 잡고 그 무거웠던 텐트를 드디어
쳤다. 드디어 우리의 집이 마련되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히죽. ^^*
우리의 집에서 잠시 숨을 돌릴 즈음 드디어 경원이 도착하
였다. 경원의 텐트를 마련한 후 간단히 밥을 해먹곤 바다로
향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다소 불어 파도가 있었지만 수
영하기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성훈은 오리발까지 낀 채로 고기를 잡아준다며 먼바다까지
나가있었고 그 외 우리는 해안 근처에서 끄적끄적 물장구쳤
다. 그리고 경원은 텐트에서 수면. --+
모래찜질을 했는데 희진의 각진 다리는 정말 오묘하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긴 허리. 아,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게 한.
^^;
점심은 한 박스나 산 신라면. 못 하는 게 없는 성훈,은 정
말 못 하는 게 없었다. 밥, 찌개, 라면, 설거지 등등 우리는
무엇이든 해내는 성훈을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안 되면 되
게 하라, 맨손의 마법사, 김.성.훈. --; 정령 해병대는 인간
을 초인으로 만들어내나 보다. --+
다시 바다에 갔는데 여전히 경원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
고, 미선은 몸이 안 좋다고 하여 쉬었다. 그런데 어떻게 너
희들, 수영복을 단 한 명도 안 가지고 올 수 있는지... !_!
간간이 비키니가 보여 나와 성훈은 그 주위를 괜히 맴돌아봤
지만 역시 예상대로 별 소득은 없었다. --;
그런데 결과적으론 란희나 희진, 미선, 모두 비키니보다
더욱 야했다. 란희의 보일 듯 말 듯한 하얀 티나 희진의 검
은 끈, 미선의 고개 숙이기 등등. 히죽. ^^;
새벽부터 시작한 하루는 정말 길었다. 우리는 연신 아직도
오늘이야?,를 외쳤고, 한 2-3일 된 듯 모두들 축 쳐진, 지친
얼굴이었다.
밤이 되어 술자리가 준비되었다. 텐트에 둘러앉아 준비한
삼겹살에 소주, 맥주, 레몬소주, 그리고 캡틴큐. --+ 게임을
하였는데 우리에게 성훈, 미선이 있는 한 게임은 무의미한
일이었던 게다. 성훈, 미선은 대작이라도 한 듯 둘이 연신
술을 마셨고, 조금씩 조금씩 뻗어가기 시작했다.
완전 취한 성훈은 바이킹을 타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가더
니 돌아오지 못했다. 끙. --+ 혼자 술 취한 성훈을 들고 오
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토록 무거웠던 텐트보다 더 무
거운 성훈. --; 겨우 반쯤 업고 왔더니만 온몸에 힘이 쭉 빠
져 더 이상 그를 옮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버렸다. 길거리
에. 씨익. ^^*
란희는 언제 술을 마셨는지 완전히 뻗어 죽으려고 하고 있
었다. 정말 란희, 죽는 것 같았다. 몸을 헐떡거리며 낑낑댔
는데 참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 경
원, 희진도 잠들어 살아남은 나와 미선은 남겨둔 삼겹살을
흐흐, 맛있게 먹었다. 이에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살아남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기를. ^^*
3. 1999년 8월 14일 토요일 제3일
정확히 시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미선과 삼겹살을 먹고 있
을 즈음 선웅, 인영, 구군이 도착하였다. 선웅과 다시 성훈
을 아주 힘겹게 들어 드디어 텐트 근처 길거리에 편안히 잠
들게 했다. 성훈은 고마워해야 한다. --;
선웅은 혼자 술 몇 잔 들이키더니 희진과 놀러 나갔고, 인
영과 구군은 음, 여전히 뜨겁게 잠들었다. --; 아침에 일어
나 보니 사다놓은 계란이 몇 개 안 남아있었는데, 음, 사악
한 경원, 배고프다고 삶아먹었단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특권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 훌쩍. !_!
14일은 바람이 세게 몰아쳐 파도가 좀 거셌지만 어제와 비
교해서 그리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수영금지,란 푯말을 붙어
놓은 채 수영을 못하게 하고 있었다. 못 하는 게 없는 성훈
이 알아본 바로는 그 날 오전 한 명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바람만 많이 불었을 뿐 날씨는 참 뜨거웠는데 그런 날씨에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인영이 끓인 찌개는 못 하
는 게 없는 성훈이 끓인 것보다 맛은 있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곤 축구를 했는데 훌쩍 삔 다리로 축구를 하다 난 다시 발
이 삐고 말았다. !_!
그리곤 패를 나누어 한 패는 포커, 다른 한 패는 고스톱을
쳤는데 포커판에서는 성훈이 잃고 선웅이 땄나 본데 고스톱
판에서는 내가 모조리 휩쓸었지비. 히죽. ^^*
라면을 먹곤 란희와 희진이 간다고 하였으나 우리의 거듭
된 만류에 귀가를 포기한 후 우린 다시 바다로 향했다. 선웅
은 우리를 대표하여 경원과 서울행 표를 예매하러 갔고, 바
다는 여전히 수영금지였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으로 우리를 부르
는 바다. 우리는 게릴라식 전법을 쓰기로 했다. 다시 말해
감시원이 없을 때 잠입하였다가 감시원이 뜨면 다시 나오는
방법. ^^;
란희, 미선, 희진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밀려오는 파도
만 맞으며 마치 볼링핀처럼 쓰러지기만 했고, 성훈은 끊임없
는 낚시 끝에 드디어 세종대왕 한 마리를 건져냈다. 처음으
로 알았다. 바다에 세종대왕께서 사시는 지. 아마도 용왕은
세종대왕인가 보다. 끙. --+
불쌍한 선웅, 단 한 번도 물에 못 들어가고 말았고, 경원
은 물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그리고 인영, 구군은 엠티 와서
잠만 자다 갔다. 차라리 여관을 잡으란 말이야. 훌쩍. !_!
또 맛있게 저녁을 먹곤 단체로 바이킹을 타고, 스테핑스테
이지에서 잠시 스텝 좀 밟다가 술판. 여전히 게임에서는 성
훈과 미선이 까맸는데 새로운 복병, 구군의 등장으로 구군은
초장부터 뻗어 인영 발 밑에 뻗어버렸다. --;
게임에 유달리 강했던 희진도 캡틴큐만 마시다가 뻗고 말
았는데 전날 란희가 그랬듯이 희진도 죽으려고 했다. --+
경원과 술에 취해 대화 좀 나누다가 이미지 게임을 했는
데, 아마도 이 게임은 그다지 해선 안 될 것 같다. 내가 웬
만한 게임은 꽤나 강한 편인데 이 게임은 담합만 한다면야
한 명 보내는 건 껌일 듯 하다. --+
4. 1999년 8월 15일 일요일 제4일
새벽, 경원이 열차 시간 때문에 콜택시를 불러 먼저 떠났
고, 잠시 눈을 붙인 난 깨어났을 때 홀로 남겨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헉, 차가 8시 50분에 출발이어서 그런지 다
들 분주했는데 인간들, 깨우질 않았던 게다. !_!
아침부터 이슬비가 아주 촉촉이 내려왔는데 비를 맞으며
우리 집을 철거하였다. 다들 지친 마음이었지만 아쉬움이 컸
을 게다. 특히 내가 그랬다. 아주 오랫동안 꿈꿔왔던 캠핑이
었던 만큼 더욱 떠나는 아쉬움이 크게 와 닿았다. 앞으로 언
제 다시 이렇게 캠핑을 갈 지 모르겠다. 아마도 편안함을 위
해 우린 다시 민박이나 콘도를 찾게 될 것만 같다.
택시 2대로 동해고속버스 터미널로 이동하여 서울로 향했
다. 그런데, 헉, 버스 안에서는 야한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
던 게다. 우리보다 젊어도 한참 젊을 것 같은 년놈 한 쌍이
흑, 누구 배아프라고 그러는지...
그렇지만 우리의 인영과 구군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던지
영화를 찍었다. --+ 앞뒤에서 에로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니
성훈이 옆에 있던 나로서는 괴로운 시간이었다. --+
서울에 도착하여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곤 헤어졌다. 난 볶
음밥을 먹었는데 짬뽕 국물이 안 나와 화가 났었더랬다. 후
에 나오긴 했지만 모자란 감이 들어 방금 짬뽕 한 그릇 시켜
먹었다. 뿌듯하다. --+
선웅과 성훈네 집까지 짐을 들고 갔었는데 성훈 집 앞에
있는 보라매공원 수영장은 음, 좋았다. ^^; 언제 거기나 한
번 가봐야지. 히죽. ^^*
0. 후담
우리 전통의 촛불의식을 못한 게 지금 아쉬움이 남고 하다
못해 돌림쪽지도 못한 게 역시 아쉽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
운 바다를 보고 왔으니 됐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바다의 모습을 말이
다. 텐트에 엎드려 있으면 하늘과 바다가 아주 거대하게 눈
앞에 펼쳐져 보였었는데 어디가 그 경계인지 알 수가 없었
다. 간혹 있는 파라솔이 아, 여기가 바닷가구나,란 생각을
하게 했을 뿐이었다.
음악이 있었다. 여름을 알리는 음악. 그런데 볼륨이 너무
작았다. 끙. --+
우리는 Butterfly파였다. 다들 어깨에 나비 문신 하나씩
새겨놨으니. --; 난 홀로 흑장미를 새겨 왕인 줄 알았더니
그게 따랬다. --+
다들 바다에 함께 들어갔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경원, 선
웅, 인영, 구군이 못(안) 들어가 아쉽다. 다음엔 같이 들어
가 보자구. ^^; 그리고 다음엔 다들 수영복 좀 준비했으면
좋겠다. 인영의 비키니는 정말 돋보였다. 최고야, 최고! ^^*
아마도 이번 엠티의 사주팔자를 봤다면 재물운, 연애운 모
두 꽝이었지만 삶의 즐거움만큼은 최고치가 아니었나 한다.
그리고 돌아온 지금, 진지함에 관해 생각해 본다.
0. 돌림쪽지
성훈 :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즐거웠을 거라 믿고, 또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 다
끝났다. 아무도 다시는 널 강제로 부르지 않을 게다. 앞으로
종종 보겠지만 아무데나 만지지 말거라. --; 이번에 정말 수
고 많았다. 우리의 즐거움은 모두 다 네 희생 덕분이란 생각
을 해본다.
란희 : 그 날 밤 너 정말 죽는 줄 알았어. --; 너 역시 죽
을 고비를 넘긴 만큼 아주 오랫동안 이번 엠티를 기억할 거
라 믿고 갈수록 그리워할 거라 믿어. 우리 때문에 중요한 학
원 못 간 건 아닌가 해서 미안하고, 그만큼 즐거웠길 바래.
그리고 이젠 내 배 좀 그만 만지렴. --;
미선 : 부단히 게임에 정진하여 훌륭한 게이머로 다시 태
어나길 바래. --+ 연약한 피부 때문에 많이 고생한 것 같은
데 좀 괜찮은 지 모르겠네? 그리고 지난 엠티와는 달리 이번
엔 일도 꽤 하던데 말야, 설마 신부수업 차근차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몰라. 히죽. ^^;
희진 : 연신 네 커다란, --;, 눈을 빛내며 히죽 웃고 있던
데 그만큼 즐거웠던 거지? ^^*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순 없지만 무엇이든 잘 해낼 거라 믿고, 그리고 아무 문
제없어. 그렇지? 그게 너고, 이게 나니까. 히죽. ^^*
경원 : 어떻게 네 시도는 잘 됐는 지 모르겠다. 네 문제는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고, 또 네 스스로 해결해 가고자
노력하니 내가 어찌 끼어볼 여지는 없겠지만 난 그런 네 모
습이 부럽다.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어 고쳐보려는 네 모습.
아마도 많이들 부러워할 거야. 그리고 종국에는 네가 승리하
고 말거라 믿어. 다음엔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이 여름바다
를 즐겨보자구. 그리고 게임 못한다고 약점이 보이는 건 아
니란 말을 붙여보마. 만약 그렇다면 성훈은 온통 약점 투성
이일 거야. 그럼에도 성훈은 못하는 게 없는 성훈이잖아. 게
다가 못 만지는 게 없는 성훈이기도 하고. --;
선웅 : 늦게 와서 우릴 위해 표 구하느라 수영 한 번 못해
미안하구나. 여름과 네 짧은 머리는 정말 잘 어울렸어. 언제
시간 맞춰 수영장이라도 한 번 가자구. 이번 엠티에서 못 논
걸 충분히 보상할 만큼 화끈하게 놀아보자구. 히죽. ^^*
인영 : 너무 뜨거웠던 거 아냐? 여관 가라구, 여관 가!
!_! 네 비키니는 정말 야했어. ^^; 앞으로도 종종 같이 여름
바다를 찾자구. ^^*
구군 : 불쌍한 것, 인영의 품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힘겹
게 헐떡거리는 네 모습이 안쓰러워. 너 인영한테 당하고 있
는 거지? 이해해. !_! 그치만 마음껏 사랑해 주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