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난 하루다. 오전부터 약속이 있어
평소 잠들기 이전 시간인 아침 7시에 기상, 나는 외출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오후에도 외출을 하였긴 했지만 근 일
주일만에 나가본 바깥 세상이기에 모든 것이 서툴렀었다. 이
미 한참 갈 길을 가고 있을 때 아차! 향수를 안 뿌리고 왔구
나, 생각을 했었다. 면도를 하고, 이빨을 닦고, 샤워를 하
고. 오늘은 잊지 않고 살짝 향수 뿌리기.
세면대가 기울어져 있는 걸 보고 고쳐야겠다고 생각은 했
지만 방법이 묘연하여 그냥 두었다. 오늘 아침에도 기울어진
세면대는 여전하다. 조만간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질 것 같다.
세면대가 깨지고 나면 수리하는 데 더욱 큰 비용이 소요될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천성이 그렇다.
그간 몰두해 있던 리니지는 나를 많이 황폐화시켰나 보다.
나는 이제 아하PC에 기사를 쓰지 않고, 전자신문 명예기자직
도 유명무실해졌을뿐더러 이곳저곳에서 독촉하고 있는 보수
작업들까지도 완벽하게 소위 쌩,으로 일관하고 있기에 엄청
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끄덕 없다고 생각한다.
그깟 것들이야 포기할 만하다. 나는 그런 것들보다도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리니지를 하고 싶다. 물론 그깟 것들이 지금 내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만.
가게들이 문 닫기 전에 빨리 앞 슈퍼에 가서 야참꺼리를
사놔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어느새 벌써 12시가 넘어버렸
다. 길 건너 편의점까지 가야한다. 혹은 굶거나. 아. 씨펄.
씨펄?
누구는 입이 없어서 욕 안 하는 줄 알아?
어제 그 여자와 그 남자는 그렇게 이별을 했다. 나는 아무
소리 없이 그들의 이별을 지켜봐 주었다. 그 여자는 뚱뚱하
고 못 생겼으며, 그 남자는 거칠고 입이 더러웠다. 이별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밝고 따스한 날을 기대하며 오랜만에 나선 아침 길인데 오
늘 날씨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나는 맑게 빛나는 하늘을 기
대하며 연신 태양을 쳐다봤지만 세상은 대체로 흐리다. 예상
외로 일찍 일이 끝나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부족한 수면 보
충.
참외가 떨이라며 3000원에 한 봉지 가득이다. 문득 보면서
참외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무실을 옮긴 후 마지막
으로 먹었던 사과와 복숭아를 기억해낸다.
이별은 그렇게 한 순간이다.
사랑은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내 2001년의 여름을 뜨
겁게 달궈놓곤 훌쩍 떠나버렸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날
씨가 느껴진다. 이제는 마음 한 구석 또한 서늘해질 것을 알
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세면대를 고쳐놓을 걸 그랬다. 언
젠가 살짝 이별을 예감했었음에도 나는 역시 아무런 대처를
해놓지 않았었다.
떠난 사람은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남겨진 내 주위
엔 온통 그 향기가 배어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짙어져
간다. 주방에 가도, 화장실에 가도, 방에 앉아있어도. 온통
함께 했던 흔적밖에 남아있질 않아 나는 난처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후회할 걸 알면서도
기울어진 세면대를 그냥 방치할 것이고, 언제나처럼 하루종
일 리니지 속에서 내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것이다. 졸리면
잘 것이고, 배고프면 먹을 것이며, 그런 시간들을 제외한다
면 나는 잡념 없이 지금의 내 할 일인 리니지에 몰입할 것이
다.
한 여름 밤의 꿈이었다고 일방적으로 치부해 버려도 나는
상관없다. 나에겐 함께 찍은 사진이 있고, 함께 했던 공간이
있으며, 그리고 함께 했던 기억들이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으
니 말이다.
누구보다도 내게 잘 해준 그녀에게
이제는 다른 길을 가겠지만 영원한 행복이 깃들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참으로 고마웠다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꼭 전해주고 싶다.
잘 살렴. http://empire.acho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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