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대학에 입학한 1996년의 중엽에
아버지께서 망나니짓 하고 다니던 나를 불러앉히고 하신 말씀은 대강 다음과 같다.
> 고3과 대학신입생을 놓고 보자면,
> 나는 고3을 더 쳐주겠다.
> 그것은 고3에게는 고3의 이름으로 짊어진 모든 일이
> 하나의 목표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대학신입생은 그렇지 않다.
선택의 길이 다양하게 열려졌음도 사실이지만,
정체성도 넓은 시각도 가지지 못한 어떤 대학신입생에게
합격 발표후의 "목표상실" 의 시기는 혼란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지금 나는 다시 대학신입생이 된 기분이다.
웃지 못하겠다.
딱희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모든 생각과 행위를
기꺼이 즐기지 못하겠다.
목표가 정해지지 않으면 확신도 없다.
확신이 없으면 내가 뱉아내는 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말을 안한다.
말을 안하려면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다.
웨냐하면 난 원래 이렇기 때문이다.
그러다 평범한 노처녀로부터 조언을 듣게 뒈었다.
프로필에 써넣을만치 딱희 이루어 둔 것도,
돈도 명예도 남자도 없는
평범한 노처녀로부터 나와 같은 기분이던 시기의 일기를 공개 받았다.
> 허공에 떠 있는 풍선을 가질려고 발돋음을 해봐도 손끝으론 다다를 수 없는곳에 떠 있는
> 듯하다.
> 잠을 이룰려고 누워보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 마치 여름밤처럼 끈적이는 공기는 목젖을 타고 깊숙한 내면으로 파고 들어와 후끈한 입김
> 을 내쉬게 한다.
> 아직도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는것에 어색하고 당황 해야 할까.
> 소리 소문도 없이 사람들은 보도블럭을 넘나드는데 언제까지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몸짓
> 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 만은 없지 않나...
> 나의 삶은 항상 같은 대답으로 나에게 화살을 꽂는다.
........
> 내가 좋아하는것들
> 굴김치, 꿋꿋하게 걸어가다가 씨익 웃어버리는 할머니,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
> 너무나 이쁜 아기들의 애교,
> 흐들어진 반지꽃, 늦은 밤 책장서랍에서 나온 한가치의 담배,
> 7년정도의 시간이 지나 만난 사람들과 먹는 아주 시원한 소주, 보기 좋은 엽서,
> 지겨움에 지쳐갈때 길거리 엠프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 춤 추고 있는 나 ,
> 깔끔히 깍은 손톱, 책장을 덮고 깊은 감동과 함께하는 부끄럼타는 새벽하늘,
> 동지들의 얼굴에 퍼지는 해맑은 웃음,
> 머릴 감고 털털 털어버렷는데도 알맞은 자리를 잡고 있는 머리카락,
> 디자인이 멋있는 MD 디스크를 발견했을때, 이쁜 색을 가진 나의 스츠키 바지,
> 저번주에 산 코발트블루 면티, 아름다운 모습의 엄마, 선생님의 칭찬,
> 택배속에 들어있는 똑딱 포장지, 선물받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비디오,
> 흙냄새나는 수돗물, 티비위에 앉아 있는 멋있는 선인장,
> 못타는 자전거, '행복해'라고 말하는 사람, '아기야'라고 부르는 김매물 어르신,
> 재숙이 엄마한테 선물받은 탄력 좋은 빤쭈 세장, 쭈쭈랑 고양이,
> 선물 받은 인도 악기 (이름은 모름 서로 부딪히면 청아하고 깊고 긴 여운을 주는 소리가 남) ,
> 초록빛이 완연한 나무잎, 산속을 휘감는 대금소리, 춤선생의 장구소리,
> 고속버스에서 운전기사 아저씨 몰래 먹는 맥주, 우연한 여행행로와 우연한 만남과 기약없는 대화,
> 우연한 영화보기에서 받는 감동,
> 내가 아~~라고 말했을때 아~~하고 알아 듣는 사람, 그들이 우~~라고 말했을때 우~~라고 다 알아 들을때,
> 5년전에 일주일동안 가게를 기웃대다가 산 마슈다 선글라스
> 산길속에 너부러진 낙엽, 수영장물속의 진공상태, 기대한대로 맞아 떨어지는 한큐,
> 깊은 심연에서 벗어나게 하는 적은 끄적임, 말없이 부딪히는 하이파이브,
> 얼마전에 알게된 티벳아티스트 융첸, 대화하지 않고 앉아 있어도 편안한 카페,
> 아 배고프다....이럴때 먹는 야참, 머 좀 먹어야겟다. 위에것들도 야참이 있은 후에 존재하는것들이다.
> 야참을 먹은후 뽈록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듣는 음악, 힛~
> 그리고 그리고 뽀뽀~
> 자신의 단점을 바꾸려 애쓰기보단 그것을 최대한 유용하게 쓸방법을 우리는 생각해야 할것이다
> - 까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