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번째 특성은 '주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강제될 수 없으며, 인간의 자유에 의해서만 실현되는 활동이
다. 사랑이 활동적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바로 '사랑은 수동적
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주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주는 것
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들은 대개 주는 것이란 어떤 것을 포기하거나
빼앗기거나 희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수용 지향형, 착취지향
형, 저장 지향형의 사람들은 준다는 것을 그런 뜻으로 받아들인다. 시장 지
향형 사람들은 뭔가 대신 받는 것이 있을 때에야 준다. 이처럼 비생산적인
지향을 가진 사람들은 주는 것을 손해로 여긴다. 간혹 희생을 무릅쓰고 준
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자기 희생이라는 '미덕'이 보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생산적 성격의 사람에게는 준다는 것이 완전
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주는 행위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힘, 부, 역량을
경험한다.이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의 경험은 그들을 기쁨에 넘치게 한다.
준다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은 생명력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받는 것보다 기쁜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젖가슴과 체온을 줌으로써 애
정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남녀는 자기들의 성을 줌으로써 사랑을 표현한다.
또한, 준다는 것은 부유함을 뜻한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유한 것이 아니
라, 많이 베푸는 사람이 부유한 사람이다. 무엇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스럽
게 조바심을 하는 저장 지향형 사람은, 실제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상
관없이 심리적으로는 가난하고 빈약한 사람이다. 자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부유하다. 그는 무엇인가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경
험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보다 더 기꺼이 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도 보장되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빼앗기는 사람은 물질적인 것을 주는 행위를 즐길 수 없다. 한계를 넘는 빈
곤은 주는 행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 때, 가난한 사람은 빈곤
이 직접 초래하는 생존의 압박뿐 아니라 주는 행위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는 사실 때문에 더욱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게 된다.
하지만 주는 행위의 본령은 물질이 아니라 인간에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은 자기 안에 깃들인 생명력이다. 주는
이는 받는 이에게 그의 기쁨, 흥미, 이해, 지식, 유머 감각, 슬픔 즉, 자기
안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력을 준다. 이처럼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줌으로
써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은 더욱 고양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상을 바라는 행위가 아닐 뿐더러 자기 희생도 아니
다. 주는 이의 생명력은 받는 이의 생명력을 고양시킨다. 또, 받는 이의 고
양된 생명력은 주는 이에게 되돌려져 그의 생명력을 한층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한층 새로워진 생명에 기뻐한다. 이러한 사
고는 마르크스에 의해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서 생각하라.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사랑에 대해서는 사랑을, 신뢰에 대해서는 신뢰를 교환할 수 있다.
만일 예술을 즐기고자 한다면 예술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기를 원한다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고 촉
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약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을 하지 못한다
면 즉, 너의 사랑이 사랑을 낳지 못한다면, 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삶을
표현함으로써 너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능한 것이며 불행한 것이다."
사랑의 두번째 특성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다. 사랑이 배려라
는 것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만일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주고 목욕을 시켜 주고 육체적 안락을 주는 것을 게을리한
다면, 우리는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 아이를 위한 어머니의 배려를 고는 그녀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을 느낀
다. 그것은 심지어 동물이나 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여
자가 자기는 꽃을 사랑한다고 말해 놓고서 꽃들에게 물 주는 일을 잊는다면
, 우리는 꽃들을 사랑한다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하는 것
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일하고
무엇인가를 키우는 것이므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극진한 관심과 배려를
통해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사랑의 세번째 특성은 '책임'이다.
오늘날 책임은 의무나, 외부로부터 짐지워진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될 때
가 많다. 그러나 사랑이 책임이라고 할 때,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활동을 뜻한다. 그것은 다른 인간의 존재의 요구에 대해 내가 반응할 수 있
다는 것 즉,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는 것과 마
찬가지로 형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낀다. 형제의 생활은 단지 그들만의 문
제가 아닐 뿐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므로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의 네번째 특성은 '존경'이다.
만일 존경이 없다면 상대방에 대한 책임은 지배 또는 소유로 쉽게 타락한
다. 존경이란 두려움도 경외도 아니다. 존경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의 고유한 개성을 깨닫는 능력을 말한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성장하고 그
사람이 제 나름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심을 아끼지 않는 것을 의미
한다. 만일 내가 남을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그와 하나가 될 수 있어
야 한다. 따라서, 존경이란 자립을 성취했을 때에만 가능해진다. 어느 누구
의 부축도 없이, 누구를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일 없이 혼자 설 수 있고 걸
을 수 있을 때에만 사랑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존경은 자유라는 토대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랑은 결코 지배의 산물이 아니라
'자유의 산물'인 것이다.
사랑의 다섯번째 특성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이다.
만일 상대방에 대한 앎(지식)이 없다면, 배려와 책임은 맹목적인 것이 되
고 만다. 또한 관심 때문에 상대방을 알고 싶어진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에
대한 지식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가 희
망 따위를 개입시키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화
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이상 깊은 것을 알
려면 그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그가 불
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 그가 외롭다는 것, 그가 죄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노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의 노여
움은 마음 속 더욱 깊은 곳에 있는 어떤 것의 표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그를 노여워하고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고통을 겪는 사람으로
서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오직 사랑만이 타인의 영혼의 비밀로 들어가
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적극적으로 깊이깊이 들어감으로
써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알게 되며, 모든 인간에 대한 이해
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진정한 실체를 알기 위해서
는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서 품고 있는 환상이나 불합리하게 왜곡된 상을
극복하여 그 사람과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하다. 사랑의 행위에
심리학적 지식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심리학적 지식을
통해 인간 존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상대방의 진정한
실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배려와 관심, 책임, 존경과 지식은 상호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성숙한 사람 즉, 생산적으로 자신의 힘을 발전시킬 수 있
는 사람, 진정한 생산적 활동에 기초한 내적인 힘을 획득한 사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성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