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소동 (2007-04-18)

작성자  
   achor ( Hit: 571 Vote: 3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1.
과음하지 않겠노라고 그리 다짐을 했건만
결국은 또 과음을 하고 말았다.

집에 어떻게 돌아온 건지도 기억이 나질 않으면서
아무튼 난 내 방 내 침대 위에서 평온하게 누운 채로 아침을 맞이한다.

지갑, 열쇠, 휴대폰.
모두 무사하다.
다행이다.



2.
전날의 그 기억이 안 나도록 마셔댄 과음은 잘 버텨냈으면서도
다음날의 짧게 삼겹살에 소주 반 병 마신 자리에서
결국은 지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20대 초반엔 술에 취해 틈만 나면 잃어버렸던 게 지갑이나 다이어리였지만
참 오랜만이다.
이런 기분.

답답한 심정 한편으로 어울리지 않은 옛 추억이 스쳐간다.
http://empire.achor.net/acboard/acboard.php?id=ae_life&m=v&num_seq=3


31살에 입기엔 조금 어색한 꽃무늬의 그 바지는
사실 예전부터 조금 불안하긴 했다.

기능성은 거의 제외한 채 오직 멋 위주로만 제작된 바지였기에
ㄴ자 모양으로 돼 있던 앞 주머니 역시 툭하면 주머니 속 물건들을 잃어버리게 하곤 했었다.
뒷주머니 역시 예외는 아니여서
매우 얕았던 그것은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다니는 내게 항상 위험요인인 셈이었다.

뒤늦은 후회해 봐야 소용 없다.
지갑 속 10여 만원은 1억 아데나라고 생각하니 아무렇지 않은데
신분증이며,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보안카드 등을 모두 잃어버려
한 푼 없는 상태가 된 것이 조금 귀찮을 뿐.



3.
전날 밤 지갑을 잃어버린 직후 분실신고는 해뒀고,
오늘은 이제 재발급을 해보자!

일단 주민등록증부터.

동사무소에 전화를 해본다.
주민등록증은 오직 주소지에서만 발급이 가능하다고 한다.
부천까지 언제 간단 말인가.
열받아 죽겠는데 전화 속 그 동사무소 직원은 주소지를 어서 변경하라고 독촉이다.
썅. --;

주민등록증은 일단 포기하자.
다음은 은행이다.
예상대로 신분증이 필요하댄다.

주민등록증은 잃어버렸고, 여권은 만료됐으며, 등본엔 사진이 없다.
난감하다.
신이 부정한다 해도 나는 나임이 틀림 없는데 내가 나임을 증명할 길이 없다.
미래사회를 다룬 SF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팔목이나 목 뒤에 바코드라도 심어놨으면 좋았을 것을.

은행 고객센터 직원과 실랑이 끝에
통장재발급엔 신분증이 필첨은 아니라서 지점에 따라 유동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는 실마리를 얻고,
우리은행 보라매지점으로 다시 전화를 건다.
당연하게도 모든 금융거래를 인터넷으로 하는 내게 있어서
통장은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다. --;

우리은행 보라매지점 상담원은 일단 오랜다.
귀찮아라.

벌써 오후 4시다.
일어나서 전화 몇 통화 하고 좀 씻었더니 벌써 4시.
이 자식들 3시 30분으로 근무시간 단축하면 나 같은 사람은 어찌 살라는 거냐, 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

서둘러 은행으로 가니
의외의 희소식이다.

대학시절 학생증이 우리은행 직불카드와 연계돼 있었는데
그 전산기록이 있어서 이미 졸업을 했지만 그걸로 내가 나임이 증명이 된단다.

일단 통장과 보안카드를 재발급 받아 통장의 입출금은 가능해 졌다.
신용카드 재발급은 7-10일 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제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좀 굶거나 친구들에게 빌붙은 채로. --;



4.
역시 삶은 오묘하다.

그렇게 필름이 끊길 정도의 과음에서 사건이 터지는 게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가볍고 작은 일에서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다.

거대한 감정의 대립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소소한 콩나물비빔밥 점심메뉴로 싸우는 법이다.

아무튼 과음하지 말자. --;

- achor


본문 내용은 6,429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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