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007-12-05)

작성자  
   achor ( Hit: 1712 Vote: 27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며칠 전 일이 조금 일찍 끝나 친구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서점에 들린 적이 있다.

서점에 갈 때면 항상 그랬듯이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찾는다.
http://empire.achor.net/diary/523


초판 1쇄가 13년도 더 된 시집이다 보니 어느 서점에서든 찾을 수 없기에
기대한다기 보단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것인데...
어랏, 있다.
대학 초년에 읽어보고, 좋아했으며, 지난 2년간 찾아왔던 그 시집이
거기 그렇게 1권 남아있었던 것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때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 역시 다시 봐도 좋다.

문학을 좋아했던 시절이 물론 내게도 있었지만
사회는 무언가 읽어야할 시간에 책 대신 신문을 보도록 강요해 왔다.

역시,
핑계다.

문학을 잊고 있던 내 문화적 암흑기에
최영미는 무엇을 했을까, 살펴봤더니

그녀도 암흑기였나 보다.
꿈의 페달을 밟고, 이후엔 근래 낸 시집 한 권이 전부다.
http://empire.achor.net/ae_munhwa/49
외국을 다녀왔나 보다.


근래 낸 시집 안표지엔 그녀의 최근 사진이 실려있다.

많이 늙었다. 그녀도.

47세.
미술학도인 데다 큰 키로 딱 보기에도 도회적인 이미지라고 이야기 되던 그녀가
이제는 얼굴에 연륜이 느껴지는 나이가 돼 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컴퓨터를 한 대 샀고,
300GB나 되는 데이터를 새로운 하드에 옮기느라 이 시간까지 이렇게 다이어리나 쓰며 버티는 중이다.

최영미와 컴퓨터가 무슨 관련이 있겠냐만,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__-;

- achor


본문 내용은 6,269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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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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