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제사에 다녀와서... (2008-05-07)

작성자  
   achor ( Hit: 1991 Vote: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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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할아버지 제사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한다.

오늘로서 이직한 지 딱 1달이 되었지만
여태 부모님껜 말하지 않았었다. 이직했다는 것을.
항상 내 걱정 때문에 하루에도 십 년씩 늙어가시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어쩌리, 나는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

집에 간 김에 말씀드린다.
학창시절엔 회사원이 되고 싶다는 나를 그토록 말리던 아버지가
이제는 내가 보통의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간다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제사 때문에 오신 친척분들께도 내 이야기를 하셨고,
친척분들은 나를 축하해 주셨는데,

대수롭지 않은 양 표정은 짓고 있었지만
나는 기분이 사실 오묘하고, 슬펐다.

꼭 무슨 백수탈출을 축하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가 치열하게 싸워왔던 내 젊음을 부정당하는 느낌과 같았다.

그들이 보기엔 내 세상에 대한 도전이
그저 안스러운 무능력자의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고,
나는 그간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노라고,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것은 내 선택이었고, 내 결연한 의지였다고!

말할까 하다가 말았다.
뭔들.
어떠리.
마음껏 생각하셔도 좋사옵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도,
나를 변명하기 위해서도
내가 지금껏 살아온 것은 아니니.

내가 내 과거의 삶에 자부심을 갖고, 애착을 갖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 뿐.

- achor


본문 내용은 6,04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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