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왕국은 언더 컨스트럭션 (2008-12-21)

작성자  
   achor ( Vote: 8 )
분류      개인

권아처 성균관대 경제 96


나의 왕국은 ‘언더 컨스트럭션’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거 어쩌죠?“

약속장소에 30분 늦게 출현한 세미정장의 괴청년, 위풍당당하게 주위를 휘 둘러본다. 그런데 웬걸, 리포터를 보자 곧바로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조금 전의 그 도도한 이미지는 순식간에 증발했다.

진리는 경험이어서 가르칠 수가 없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이다. -라즈니쉬

세 가지 길에 의하여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사색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가장 높은 길이다. 둘째는 모방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가장 쉬운 길이다. 그리고 셋째는 경험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다. -공자


“대학교 5학년”이라고 장난스레 자기소개를 시작한 권아처씨는 현재 성균관대 경제학과 96학번으로 재학 중이지만, ‘아처웹스’라는 웹 에이전트 업체 대표로서의 활동으로 더욱 분주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처웹스는 지난 99년, 컴퓨터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과 설립한 ‘청년기업’으로 2000년부터 한국대학신문, 잡투데이, 행자부, 중앙일보 등에서 유망대학벤처로 선정된 화려한 전적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와 YWCA, 경찰청 같은 유수한 기업 및 기관의 웹사이트 제작을 맡기도 했다. 요즘은 웹페이지 제작에 머무르지 않고, 각종 게임과 웹서버, 일정관리 프로그램 등을 제작하고 있는 중이란다. 지금 하고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무척 각별했다...는 회사 소개는 이쯤에서 줄이자. 아처웹스는 권아처라는 사람을 우리의 눈에 들게 해 준 유용한 계기였음을 인정하면서.

경험은 나의 힘

대학벤처 CEO라는 번지르르한(?) 직함보다도 우리의 시선을 더 잡아끄는 것은 그의 다양하다 못해 백과사전적이기까지 한 활동 경력이 아닐까 한다. 현재의 본업과 연관된 IT관련 활동 사항을 제외하더라도 대학생들의 ‘땡보직’이라는 과외교사부터 시작해 붕어빵 장사, 편의점 점원, 호텔 짐꾼, 공장 노동자, TV 연속극 엑스트라, 한국갤럽 조사원, 단란주점 웨이터, 바텐더 등... 방향조차 종잡기 힘든 잡식성의 경력들이 그의 홈페이지를 빼곡이 수놓고 있다. 단순히 용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한 아르바이트라고 보기에는 경험에 대한 욕심이 너무 지나쳐 보였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허영으로 치부하기에도 역시 지나쳐 보였다.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같이 느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거다 싶으면 다 한 번씩 덤벼들었죠.”

권씨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가장 싫다고 했다. 한 가지의 잣대만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젊음이 가지는 ‘또 다른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위험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필드에 직접 뛰어들어 피부로 느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는단다. 그 경험의 기간이 길든 짧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결국 겪은 보람이 있는 것이다. 물론 ‘공부’가 깊을 수록 거기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겸허함이 필수일 터인데, 그는 자신의 지난 경험들에 대해 “짧은 만큼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부끄럽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꼼꼼히 기록해 둔 소중한 체험과 기억들은 앞으로의 삶에서도 자신을 지탱해 주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경험 중독증(?)의 경과...

이와 같은 그의 왕성한 잡식성은 고등학교 시절을 기점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학업 외에도 영화, 음악, 문학, 컴퓨터 등 많은 분야에서 자신의 가치를 키워 가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계기가 됐다고.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는 저도 ‘범생’이었어요(웃음). 그런데 고등학교 가 보니까 전 별 거 아니더군요. ‘공부말고도 할 게 이렇게 많구나’ 하는 것도 그 때 느꼈구요.”

그 때부터 권씨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문학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 문집을 제작하기도 하고, 컴퓨터 실력을 발휘해 미디로 자작 음반을 만들기도 했단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문집은 ‘민망할 정도’였고, 교내에서 100장이 팔렸다는 그의 음반 수익금은 친구들과 간식비로 탕진했다고. 그러나, 겨우 시작이었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성취감과 즐거움으로 남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불붙기 시작한 경험에의 욕구는 대학에 와서 식기는커녕, 더욱 구체적이고 다양해졌다. 자신이 원해서 ‘벌이는’ 많은 일들에 대한 부담을 주위 사람들에게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낀 권씨는 대학 1학년 2학기에 일찌감치 ‘독립’을 선언했다. 단순히 공간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까지 말이다. 물론 부모님의 반대도 거셌지만, 결국 그의 고집은 관철됐다. 스스로 택한 자유와 경험에 대한 ‘책임’을 직접 지는 과정에서 그는 앞에서 언급한 잡다한 아르바이트의 시기를 거쳐 각종 컴퓨터 전문지와 영화지의 기획기자 활동 및 모전자 웹 프로그래머 활동 등을 ‘웹아처스’ 운영과 함께 해나갔다. 그리고, 한국 사이버감시단 간사로서 미디어 및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SBS의 인터넷 유료화 문제를 놓고 ‘안티SBS’ 운동을 전개한 것도 그 즈음이었단다.

《늙은 에스키모 이야기》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인터뷰 중에 뜬금없이 그가 던지는 한 마디.

“그런데, 솔직히 이런데 나오는 거 부담스러워요. 요즘은 저조차도 혼란스럽고, 앞길이 두려운데, 마치 뭔가 이뤄놓은 사람인 양 취급받는 것 같잖아요.”

속된 말로 어느덧 ‘꺾인 지’ 2년이 지나버린 그는 예전과 달리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후배들에게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자기 삶의 주체가 되라’는 말을 종종 해줬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듦을 느끼면서 ‘누구나 가는 평범한 길에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는 성석제의 단편 《늙은 에스키모 이야기》를 들며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한 늙은 에스키모가 비버를 노려보면서 주먹만 꽉 쥐고 있어요. 그 에스키모는 비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 지 모두 알고 있지만, 그걸 깨닫는 중에 이미 너무 늙어버린 거죠. 저도 나중에 그 늙은 에스키모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항상 있어요.”

또 소설가 박일문을 좋아한다는 권씨는 박일문의 작품들 중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아직 사랑할 시간은 남았다》에서 고민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나타난 운동권 학생들과 그들 중 ‘살아남아’ 이 사회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의 모습들이 무척 와 닿았어요. 그 분의 글들을 읽고 나서 ‘난 어떤 모습으로 훗날 살아남아 있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 하게 되었죠.”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에게 자기처럼 사는 게 낫다고 자랑할 만큼은 아니지만, 스스로 택한 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금 느끼는 혼란과 고통 정도로 넉다운 되기엔 그 동안 키워 온 ‘맷집’과 희망이 아깝단다.

“힘들어요, 그건 정말이에요. 하지만, 아직은 괜찮아요.”

지금은 그간 벌여오던 많은 일들을 정리하고, 학업과,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아처웹스’에 매진할 계획인 권씨는 이 일을 통해 부와 사회에 대한 공헌을 동시에 꿈꾸고 있다고 나직이 밝혔다.

아처 엠파이어

권씨는 당돌하게도(?) 개인 홈페이지 이름을 ‘아처 제국’이라고 지었다. 그 속은 그가 겪고 느끼고, 꿈꾸는 것들이 ‘나르시시스트(?)’라는 혐의를 줄만큼 꼼꼼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경험에 대한 성실한 의욕과 끊임없는 반성으로 자신의 길을 다지는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혐의일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만큼 계속 채워 가는 그는 자신의 삶 전체에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이다. 자신의 땀으로 쌓아 올리는 그의 제국은 앞으로도 계속 ‘건설중’일 것이다.

권아처 홈페이지 - http://achor.net/
아처웹스 홈페이지 - http://company.achor.net/

이재걸 학생리포터 claritas@hanmail.net

사진 장우성


본문 내용은 5,813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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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2008-12-22 01:59:33
예전 인터뷰 했던 기사를 보며 문득 그 시절엔 그래도 멋지게 살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면 사실 지금은 좀 부담스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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