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비스의 독백 (201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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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339 Vote: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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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D      문화

어느 어비스의 독백

나는 흐르는 어둠 속에 몸을 맡긴다.
살을 에려 오는 고통이 있을 지라도,
뿜어져 나오는 피가 나를 버티기 힘들게 할 지라도
나는 심연의 어둠 속에 몸을 맡긴 채
눈 앞에 대면한 한 명의 敵만을 주시한다.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생명력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별로.
그런 것은 상관 없다.
나는 죽음 따위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죽는 것은 나의 수치가 아니다.
나의 수치는
오직 내가 죽여야할 敵을 죽이지 못한 채 죽는 일뿐이다.

경쾌한 움직임과 뼈조차 무너트리는 내 강력한 한 방은
敵이 나를 발견했을 때 이미 그를 차가운 바닥에 눕혀놓고 말 것이다.
그 이후는 그저 어둠에 맡기면 된다.
나는 내가 죽을 지언정 반드시 길동무는 만들어 내고 만다.

이런 나를 사람들이 기억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인기 따위는 관심 없다.
나는 오직 내가 죽여야 할 敵만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敵을 향해 어둠 속에서 내 작은 칼을 굳게 쥔다.


by 빴 (2004년)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386&l=14069


한때 빴,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검색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낯선 공간에 누군가에 의해 옮겨져 있는 내 옛 글을 보며 그 시절을 잠시 떠올렸다.


시간에 밀려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
2004년의 플레이포럼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리니지2 커뮤니티였다.

그 속에서는 다양한 게이머들이 서로 의견도 나누고 열띤 토론도 하곤 했었는데
누군가 타 직업을 멋지게 표현해 놓은 글을 보곤,
당시 서버 최초의 어비스워커 영웅으로서
나라도 어비스워커를 대표해서 뭔가 화답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저 (나름의) 시를 쓰던 기억이 아직 뇌리에 선명하다.


내 옛 추억이 누군가에게 회자된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즐거운 시절을 떠올리는 것도 즐거운 일인 듯 하다.

- achor


본문 내용은 3,49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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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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