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끄적끄적 93 0008 벽 (2000-09-21)

작성자  
   achor ( Hit: 2145 Vote: 35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끄적끄적

『칼사사 게시판』 37199번
 제  목:(아처) 끄적끄적 93 0008 벽                                  
 올린이:achor   (권아처  )    00/09/21 06:21    읽음:  0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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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부모님께서 내 홈페이지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겨우 며칠 전의 일이다.
    어머니께서 넌지시 건내시는 말씀 속에는 뼈가 들어있었다.
    "지금까지 잘 키워놨더니 무슨 요리 못한다고 투정이니?"

    아버지께서도 어느 날 당신답지 않으시게
    '엔초'를 한아름 사들고 오셨다.
    어머니로도 부족하여 아버지까지 '엔초' 열풍이기에
    나는 왠 엔초냐고 물었고, 아버지께서는
    "네가 이 아이스크림 잘 먹는다고 해서...", 라고 말씀하셨다.

    요리 이야기나 엔초 이야기는 내 홈페이지에서밖에 안 했었기에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내 홈페이지는 부모님이 보시기에 부적절한 점도 있다는 것을
    나는 예감하고 있었던 게다.

    그렇지만 애초에 내 홈페이지는 내 부모님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억울한 면이 많았다.

    나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있어서
    일종의 벽이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는 쪽에 서 있다.
    부모는 자식의 상위레벨 관리자가 아니라
    서로 동일한 선상에 있는 개별 개체이기를 원하는 게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이 빈 공간으로 남겨지는 내 방조차
    부모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이 달갑지 않다.

    나는 부모님께서 어떤 것들을 보셨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부모님께서 모르시고 계시는 편이 좋을만한 이야기들이
    충분히 많이 들어있었다.
    물론 자신의 신상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자식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게 자라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마마보이라고 경멸하는 쪽이었기에
    우리 부자, 모자 사이에는 이미 많은 벽들이 구축되어 있었던 게다.

    그런데 이 벽은 그동안 너무나도 굳건했기에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결코 허물어지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는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 또한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친구들과 부모님과의 접촉이 싫었던 까닭이었다.

    그렇지만 이 벽은 인터넷이란 가공할 위력 앞에
    아무런 힘 없이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개인 홈페이지에 하나하나 인증을 받을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공개될 수밖에 없음에도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인터넷에 속한 내 홈페이지는
    부모님이 침범에 커다란 약점을 노출하게 된 게다.

    기본적으로는 부모님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나는 분명히 부모님께서 내 홈페이지에 오시는 걸 반대하고 있으니
    부모님께서 나를 위하실 거라면
    내 홈페이지에 오지 않으셔야 한다.

    이 글 또한 보실 지 모르는 부모님께
    다시금 내 홈페이지에 오지 않으시길 간절히 촉구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제는 많이 둔화됐지만
    나는 아직 극단적인 리버럴리스트쪽에 속할 게다.

    원칙적인 자유는 누구를 불문하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만약 앞으로도 부모님께서 내 홈페이지에 오신다면
    내 자유는 크게 제한받을 것이 분명하다.

    새삼 인터넷의 무제한적이고 포괄적인 환경에 놀라고 있다.
    흠. 어쩌면 좋을까...



 제  목:(아처/] 새벽 4시 10분                                       
 올린이:achor   (권순우  )    00/08/15 04:15    읽음: 22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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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려오는 눈을 부비며 나우누리에 접속하여
    언제나처럼 이곳에 온다.
    그러다 문득 user를 해보곤 'achor(권순우)'라고
    덩그러니 놓여진 파란 화면에 깜짝 놀란다.

    아, 이런 나 혼자 있군.
    새삼스런 일이 아닌데...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아님 모두 떠나버린 텅빈 거리에서,를 이럴 때 써야 할까.
    에잇 뭐든 상관없지. 나는 단지 늘 보아왔지만
    갑작스런 돌출에 깜짝 놀랐던 것 뿐이니까.

    어느새 4년 하고도 반이나 훌쩍 지나버린 시간들 속에서
    많은 이와 만났고, 많은 이와 헤어졌고.
    많은 기쁨을 겪었고, 많은 슬픔을 겪었고.
    내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내 후배가 그럴 것처럼.

    애닮다, 시간이여, 내 젊음이여.
    그리고 사랑스런 2000년, 생애 단 하나뿐인 내 여름날이여.

    폭발하라! 뻥!

                                                            achor WEbs. achor

 제  목:(아처/] 내가 만일...                                        
 올린이:achor   (권순우  )    00/08/29 17:24    읽음: 19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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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일 여자였다면,
    나는 나 같은 남자를 만나 꼭 결혼하고 말테다!

    내가 만일 게이였다면,
    나는 나 같은 남자를 만나 꼭 결혼하고 말테다!

    내가 만일 호모였다면,
    나는 나 같은 남자를 만나 꼭 결혼하고 말테다!

    그리고
    내가 만일 아처였다면,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여 결코 결혼하지 않을테다!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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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