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들으며... (200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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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351 Vote: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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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학교에 갔다는 것은 내게 기록할 만한 사실이다.
앞으로도 계속 등교를 하게 된다면 학교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 더이상 기록하지 않게 되겠지만
지금의 나는 학교에서 많은 인상도 받고, 또 많은 느낌도 얻게 된다.

오늘 또한
수업이 점심 무렵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몰라 아침부터 분주해 하다가
결국은 잠들어 맨 처음 수업은 결석하고 마는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나는 즐겁게 수업을 듣고 돌아왔다.



Software Engineering 수업은 학생들끼리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완수해 내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SI를 듣지 않은 학생이라면 드롭을 추천하는, 다소 빡쎈 수업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수강신청을 할 무렵에도 자리가 좀 남아있는, 컴퓨터쪽에서는 거의 유일한 수업이었다.

나는 이런 SI나 SE 수업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수업은 가장 응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요구하는 소프트웨어를
팀원들의 실력만으로 직접 만들어 낸다는 게 내가 지금까지 접했고, 또 앞으로 접해야할 그런 일이었다.

그러나 수업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처음 참석한 내가 끼어들 자리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10명 남짓의 수강생들은 모두 두 팀으로 나눠져 있었고,
특별히 놀라운 실력을 갖추지도 않은 데다가 타과 출신의 낯선 이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갖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여행 덕분에 익숙해진 건 낯선 이들과 쉽게 친해지는 일이다.
물론 이것은 과거, 옛 전우들과 거리에서의 수많은 도전으로 그리 신선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의 공력은 한층 강화되어 있던 게다.
나는 이 공력으로 처음 본 친구, 선배, 후배, 교수님과 나름대로 친해졌고,
그리고 한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는 영상과 화상, 모두가 가능한 다대다 화상회의를 만들 예정이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여 팀에 큰 도움은 못 주겠지만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 같다.

아참.
우리 상대편에는 아처보드 테마 문제 때문에 이야기 나누고 싶어했던 zeroboard 개발자, zero 선배님이 있었다. --;
만약 아처보드가 제로보드만큼 유명했다면 이것은 다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을.
제로보드 개발자, 아처보드 개발자와 수업을 같이 듣다! --+



다음 수업은 실험이었다.
내가 속해 있는 정보통신부의 포괄적인 수업이었는지
전기, 전자, 컴퓨터 등에 관한 모든 실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수업은 조교가 진행하였는데 조교는 나를 많이 환영해 주었다.
그는 내가 경제학과 출신에다가 그간의 수업도 많이 빠져서 힘들어 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
나는 수업의 마지막까지 남아 조교와 끝까지 실험을 했다.

오늘 했던 실험은 전기에 관련된 것으로
동기식, 비동기식 카운터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회로판에 트랜지스터와 전선을 꽂아 순차적으로 카운팅이 되는 간단한 시스템이었는데
처음 접한 전기공학이었지만 사실 나는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선해 보이는 조교는 여전히 나를 도와주었다.

이 수업 역시 2-3명씩 팀을 이뤘는데
98학번, 내 팀 동료 또한 나를 많이 도와주려고 애썼다.
감기에 걸렸던지 연신 훌쩍훌쩍 거리면서도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들을 계속 내게 설명해 주었다.

모두들 간 후 혼자 조교와 남아 실험을 할 때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실험은 재미있었다.
이공계 수업은 문과쪽 수업과는 달리 행동적이라는 게 좋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나니 저녁 8시.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수업을 착실하게 들었다는 포만감 때문인지
아니면 몇 친구, 선후배, 교수님들과 조금 친해졌다는 만족감 때문인지
가슴 속이 꽉 찬, 그런 느낌이었다.

신대방역에 내리니 고등어 자반 냄새가 어디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루종일 한 끼도 안 먹었더니 배가 슬슬 고파왔다.
포장마차에서 닭꼬치 한 개 물고 돌아오며 정말 가을이구나, 생각했다.
이제 다시 내가 좋아하는 오뎅, 닭꼬치 같은 것들을
호호 불어가며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여전히 흘러간 여름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한 느낌도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어제 내기 했던 형님과 vluez에게 밥 쏘라고 떵떵거린 후 배부르게 밥 한 끼 먹고 잠깐 취침.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불어온 찬 바람에 잠을 깼다.
바람이 차갑다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 가을은 흘러가고 있고,
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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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