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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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Vote: 57 )
분류      잡담

그렇게 경멸해 마지않던 문학에 다소간의 애정을 갖게 된 게

그리 오랜 이야기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또다시 책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아, 엄밀히 말하자면 책이 아니라 문학이겠지.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만큼

뛰어난 애독자는 아닌데

예전에도 대개 내가 책을 읽었던 시간은

버스나 지하철 같은 이동할 때였다.



요즘도 그 버릇은 남아있어서

특별히 엄청나게 피곤하지 않다면

공부하고 있는 프로그래밍 책을 꺼내놓고 보던가

적어도 스포츠신문이라도 봐야 안정이 되는 정도다.



그런데 그 효과는 가벼운 것이 아니라 실로 대단한데,

나는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php에 대한 공부는

거의 대부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조만간 운전면허를 딸 계획인데

그렇게 직접 오너드라이버가 된다면

내 삶에 촉촉한 즐거움이 되어버린 이동시 문자들과의 교접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제 왠만한 php 프로그래밍이라면 할 수 있다는

어설프고도 섣부른 자신감에 요즘은 php 공부를 그만 두고

그 무거운 책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데

어제부터인가 지하철에서 할 일이 없던 게였다.

이동시간이 많은 나는 이미 그 날의 신문은 봐둔 상태였고,

공부할 책도 없었더니 난처함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근처의 서점에서 급하게 산 책이

안 그래도 예전에 아주 읽고 싶었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어제, 오늘, 틈틈히 본 바에 의하면

정말 만족할만한 책임이 분명했다.



워낙 극찬도 많이 받았고, 또 한국문학의 거장 이문열을 만든 작품이기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읽었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만큼 깊은 공감에 빠져든 사람도

그리 흔치 않으리라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었다.



기본적으로 나 역시 세상의 모든 종교를 부정하는 편인 데에다가

고등학생 시절에는 기독교 중창단인 '사루비아' 멤버들과

고루 돌아다니며 그들의 종교적 확신을 깨트려 보고자 많은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천성이 개구쟁이였던 내 장난끼도 한몫 했겠지만

한창 입시열이 과열되었던 그 시기에

나 또한 신을 통하여 위안을 찾고자 했으나

마땅한 신을 찾을 수 없어 그들에게 투정을 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쨌든 꽤 오랜만에 읽어보는 소설은

나를 아주 기분 좋게 만든다.

예전 같으면 읽기 즐거운 소설이야 그 자리에서 다 읽어낸 후

무언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요즘처럼 틈틈히 다음 번 이동시간을 기다리며 읽는 것도

많은 기대심을 불러 일으켜 괜찮은 일인 것도 같다.



그리고 한때 품었던 막대한 지식의 갈망도 다시금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나는 이제 지식있는 아내 보다는 지혜있는 아내가

월등히 낫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예쁘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지만

너무나도 똑똑하여 독선에 철저히 빠져있는,

아무리 아름다운 아내라도 부정한다.



신문이나 기능서적만 볼 게 아니라 틈틈히 소설 좀 봐야겠다.

기발한 상상력과 수려한 문장을 보니 여러모로 참 좋군.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939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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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경악          Re 3: 영화를 보고~~( E HU TIEM )~연어님!!^^* achor 2000/09/07
1367             Re 4: 영화를 보고~~( E HU TIEM )~연어님!!^^* 눈맑은 연어 2000/09/07
1366             Re 4: 제 8요일은 친구와^^* 이선진 2000/09/07
1365       Re 1: 영화를 보고~~( E HU TIEM ) applefile 2000/09/07
1364     흔적.. 눈맑은 연어. 2000/09/07
1363답변      Re 1: 흔적.. achor 2000/09/07
1362     끝까지 읽어 주세요.... 주유소 2000/09/07
1361       Re 1: 끝까지 읽어 주세요.... 이선진 2000/09/07
1360고발    ㅠ.ㅠ 주유소 200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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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잡담      Re 1: 노래를 쓴다 applefile 2000/09/07
1354         Re 2: 노래를 쓴다 이선진 2000/09/07
1353답변      Re 1: 노래를 쓴다 양사내 2000/09/07
1352잡담    소설을 읽으며... achor 2000/09/06
1351답변      Re 1: 소설을 읽으며... 이선진 2000/09/06
1350     엽기대문.. venik 2000/09/06
1349답변      Re 1: 엽기대문.. achor 200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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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2/10/2025 21: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