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삼성전자 시절에는 정말 널널했던 것 같다.
매일 같이 지각해도 별 탈 없었고,
졸리면 졸고, 밥시간 되면 딱딱 밥 먹으러 가고.
또 아무리 일이 있더라도 5시면 칼 같이 퇴근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그 시절.
그래서 그 시절에는 툭 하면 이곳에 접속하여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도 늘어놓고, 방문객들과 이야기도 나누기도 했었다.
많은 인원이 함께 작업에 들어가 있어
그런 방만함이 모두들 은연 중에 깃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 경찰청은 경우가 참 다르다.
물론 여기 역시 다 합친다면
5-6개 업체들이 각각 웹, 장비, DB, 보안, 프로그램 등등을 맡아
적잖은 수를 형성하겠지만
모두들 맡은 파트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많이들 책임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는 요즘 웹개발팀장쯤으로 활약하고 있다.
내 아래까지는 아니더라도 28살, 33살의 형들 두 명이
내 기획 및 방향을 듣고, 작업을 한다.
물론 내 위에도 부장이나 전체팀장이 있다.
어쨌든 그렇게, 사이버경찰청 웹개발팀장 신분으로 참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국가 기관들이 대개 그렇듯이
예산이 책정되면 금전적인 부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지라
서버나 네트웍 장비, 기술 등 다방면에 있어서
최고 수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나는 여기 와서 정말 서버다운 서버들을 보았고,
난생 처음 듣는 용어, 장치, 프로그램들도 많이 접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L4 Switch를 이용하여 HP Unix 두 대를 묶는다 했을 때
나는 L4 Switch를 처음 접했던 게다.
우리 쪽도 네트웍 장비가 전문이 아닌지라 다들 잘 알지 못하는 장치였는데
그리하여 책임의식을 느낀 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을 한 후
전문 회사에 연락을 하였다.
그러나 그 전문 회사조차도 내 물음에 정확하게 답변을 해주지 못했다.
이곳에 있으면 점심이나 저녁은 대개
중국요리를 시켜 먹게 된다.
그런 식사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
배고플 때 밥을 먹고, 밥을 다 먹었으면 잠시의 틈도 없이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일주일에 7일 출근하고 있고.
지난 밤에는 결국 머리가 아주 어지러운 지경이 됐었다.
그렇지만 조미라 기자는 원고 마감이 1주일이나 늦었다고,
결국 내게 화를 냈었고, 새벽 3시까지 원고를 주지 않으면
다음 달 기사가 나갈 수 없다는 최후 통첩을 해왔다.
어차피 졸작이겠지만 아무도 안 읽어준다 하더라도
내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한 편의 기사가 되길 바라는 게
모든 집필자들의 공통된 심사일 것인데
나 또한 예외는 아니라서
시간에 쫓기고, 또 어지러운 머리에 고생하면서도
결국 기사를 넘겨낸 후 바로 쓰러져 잠들었었다.
물론 그렇다고 태초에 게으르고 일하는 걸 싫어하는 내가 일만 하는 건 아니다.
한 달쯤 전에 책을 읽고 있지 않은 내 자신에 대한 원망을 많이 이야기 했었는데
요즘은 틈틈히 책을 읽고 있다.
그건 내게 사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나는 여전히 첫째로는 음악가를, 그 다음으로는 소설가를 꿈꾸고 있기에
책을 읽는 건 내 꿈을 위한 나의 소중한 노력처럼 느껴진다.
신림에서부터 서대문에 위치한 경찰청까지 가는 데에는
2호선을 타고 신촌쪽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어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
나는 최근 반성코자 잡은 법정의 무소유를 필두로
은희경의 새의 선물,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읽었다.
특히 선영이가 선물해 주었던 새의 선물은 꽤나 재미있게 보았다.
또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는 초등학교 동창들도
뒤늦은 알럽스쿨 열풍임에도 풋풋한 행복감을 주고 있고.
나는 요즘 이렇게,
경찰청에서의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나는 다소 피곤하진 하지만
그간 내가 접하지 못했던 많은 정보와 지식들을 익히고 경험할 수 있는 데에
크나큰 행복감을 느낀다.
아직은 부족한 점, 적잖지만
이렇게 꾸준히 노력해 나가다 보면
종국에는 좋은 결과가 오리라 나는 아직 믿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무언가 배워나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다.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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