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날 성훈과 술을 마실 때면 우리는
서로의 잔을 하나하나 세곤 했었다.
내가 세 잔 마셨을 때 성훈이 두 잔 마셨다면 그날의 패배자는 성훈인 것이었다.
그러기에 우리의 술자리는 언제나 전투였고,
또한 그 결말은 언제나 참담한 편이었다.
지금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쉬운,
내 젊은날의 기록이 고스란히 적혀 있는 다이어리 등을 분실했던 건
언제나 그와의 술자리였고,
그 역시도 술에 취해 많은 소중한 걸 잃은 걸로 알고 있다.
비록 덕분에 잃어버린 것도 많았고,
거리에 그대로 쓰러져 뻗어버리거나 술에 취해 엄한 짓을 한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 둘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음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2.
그러나 이러한 호전성은 성훈 이외의 상대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 진실이다.
즉 이미 기억이 남아있는 그 순간부터 전투해 왔고, 그러기에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해 보이는 성훈이 아니라면
상대가 두 잔을 마시든, 세 잔을 마시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마시고 싶을 만큼 마시고, 상대방도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술 권하는 사회의 폐단도 알고 있고,
술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의 고충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대개의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긴 한데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는 상황이면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 같다.
조건1: 상대가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조건2: 나는 술을 마시고 싶은 날이다.
3.
그러한 날의 결론은
나는 만취하여 온갖 추태를 보이게 되고,
상대방은 맨 정신에서 내 그러한 만행을 제대로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
나는 술에 취하면 말이 좀 많아지고, 또 그 말의 내용이 좀 극단적이 되는 편인데
술 취한 행동치곤 뭐 아주 나쁠 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는 있는 행동이지만
사실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취중의 내 발언을
다음 날 타인을 통해 듣는 일은 어마어마하게 쪽팔린 일이긴 하다.
특히나 그렇게 극단화된 내 말을
술 취했을 때 진심이 나온다는 신념으로 그대로 믿어 버리는 술 안 마시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간혹 난처함을 당하곤 한다.
그러기에 이것은 술을 마시는 예절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술잔에 술이 남았을 때 술을 따르지 않는 것이나
어른 앞에서는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는 것이 한국의 형식적인 주도라면,
술 취한 상대방의 어수룩한 이야기를 가지고
다음 날 놀리거나 장난치지 않는 것은 만국 공통의 인간이 모름지기 가져야할 내적인 주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
술 마시지 않는 자들에게 고하노니,
너희들이 술을 마시건, 안 마시건 상관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술 마시지 않았다는 특권으로 술 취한 사람을 희롱해서는 안 될 것이니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