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보면 놀라운 변화이지만, 멀리서 보면 큰 그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이번 SK하이닉스의 인텔 메모리 사업 인수도 그 범주에 속하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 그림이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기 위해, 한국·대만·일본에 서로 다른 ‘역할’을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3국이 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도, 결국엔 미·중 전쟁에서 미국이 최종 승자가 되겠다는 것이지요.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한국은 메모리,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수탁생산), 일본은 반도체 소재·제조장치 중심으로 역할 분담을 유도하고, 미국은 미래 기술전쟁의 열쇠인 데이터 비즈니스와 AI반도체에 집중해 독보적 경쟁력을 갖춰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고, 반면에 미국의 테크기업들이 더 큰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겠지요.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만, 이런 차원에서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 인수를 바라본다면, SK하이닉스가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인수의 리스크 중 하나가 SK하이닉스의 전체 메모리 매출에서 중국 비중이 절반에 달할만큼 높고, 인수의 핵심인 인텔 주력 공장이 중국에 위치해 있다는 것일텐데요. 인텔이 SK하이닉스에 자사 메모리를 넘겨 처분하는 것을 이런 ‘역할론’에 대입해 본다면,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이 높은 것이 의의로 미국이나 중국의 눈에 거슬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