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홀로 자취생이 그렇듯이 나 역시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곤 한다. 물론 이런 나름대로 가치있는 고독을 위해
기꺼이 독수공방을 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른 방
법을 통해 이런 외로움을 어느정도 누그러뜨리는곤 하더라.
이런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외곬로 자기의 온 정
력을 쏟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대안을 찾는다. 그렇지만 이 두 경우는 적극적이거나 활동적인
사람들이 주로 택하는 방법이고 폐쇄적이거나 소극적인 사람들은
일단 사람은 거부하고 어떤 잡품에 대해 지독한 편집증을 보이거
나, 애완 동물을 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나도 이를테면 애완 XX를 가지게 되었다
고나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의 애완 XX는 좀 특별하다. 나의
애완 XX가 일반적인 애완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단 자의에
의해 기르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고, 또 이 애완 XX는 말도
할 줄 알며, 때로는 밥도 하고 내 비위를 맞출줄도 알뿐더러 학교
에서는 거창하게 토익이라는 강의도 듣는다는 점이다.
그 애물단지의 이름은 이/창/진/
앞으로 이 사유할 줄 아는 개체와의 생활에 대해 종종 글로 옮겨
볼까 한다.
이 곰인형을 연상시키는 인물이 우리집에 들어온 것은 9월 첫날
즈음일 것이다. 그는 우리 학교 어학원에서 아침 9시에 시작하는
토익 강좌를 듣는다. 그의 집은 인천 근처에 있는지라, 학교와
가깝다는 명분으로 우리집에서 함께 지내겠노라 말하는게 합리적
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와의 동거를 흔쾌히 받아 들였던 이유중 하나는, 그가
학교 근처에서 과외를 한 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제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과외를 힘들게 겨우 겨우 구하긴 구했으나, 서울
에서가 아니라 그의 집 근처 인천에서였다. 일주일에 이틀짜리
다.
결과,
인천과 서울을 왕복하는 노가다가 일주일에 두세번씩 반복된다.
역시 곰같은 정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 듯 싶다.
곰(이제부턴 창진이란 이름 대신 곰이라는 애칭을 쓰겠다)과 동
거를 시작한지는 약 5일정도 되었다.
저자가 심히 졸린 상태이므로 간략하게 지금까지의 생활상을 공
개해보면,
1. 곰이 우리집에 들어온 날, 곰은 syear학번 모임내 소모임 act
의 짱이 되었다. 분명히 입술은 귀찮은 일 떠맡게되어 귀찮아 죽
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입은 귀 밑까지 찢어져서 기뻐하니, 과
연 저게 귀찮아 하는 사람이 짓는 표정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
다.
2. 곰이 소개팅을 나갔다. 모양의 주선으로 소환을 받은 상대 여
성은 창진의 말을 빌리자면, 주선자 모양만큼이나 눈이 부리부리
했으며 자기에게는 과분할 지경이라고 했다.(정확히 곰이 했던
말은 "내가 지금 가릴게 어디있냐"였다) 창진의 여성 편력 및 여
성 궁핍은 이제 막을 내릴 것 같기도하다. 왜냐하면, 상대 여성
의 이상형은 '곰돌이 푸' 같은 남자며, 개인적으로 배나온 남자
를 좋아한다고 했단다. 이 말을 하면서도 창진은 입이 찢어질 기
세였다.
3. 고향에서 어렵사리 구해온 게임 '삼국지'와 '워크래프트2미
션'을 하다가 곰과의 동거 첫 날 난 밤을 샛다. 내가 게임으로 눈
을 붉히고 있을 때, 곰은 잠만 디비 잤는데 이제는 곰이 밤을 새
고 있다. 곰도 게임을 무척이나 좋아하나 보다.
4. 어제 응수(주:친구, 아이디는 오만객기)가 방문을 했다. 전날
밤을 새서 모처럼 응수가 왔는데도 나는 잠만 잤던 것 같다. 나대
신 옆에서 창진이가 함께 놀자는 응수의 요구에 응수했다. 저녁
9시 즈음엔 응수가 사준 맛난 짜장면을 먹었다. 그리고 10시즘
응수는 떠났다.
5. 첫 번째로 창진이 인천으로 떴다. 과외를 하기 위함이다. 그
런데 5일만의 독수공방으로 기대에 부풀어 있던 참에 또 다른 불
청객이 지금 이 방에서 이부자리 펴고 잠들어 있다. 아/처/다.
열악한 경제 상황으로 전화 요금을 못내 통신이 끊겨 우리집에서
이제껏 통신하다 막 잠이 들었다.
6. 오늘은 1997년 7월 이후, 처음으로 긴 팔 옷이 아쉽던 새벽을
맞은 날이었다.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