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VA] 내가 소설누리에 올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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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amuplu ( Vote: 30 )

Fascinate*





장마철에 어울리지 않는 화창한 날씨다. 잠에서 깨어난 시간은 오전 11시..

머릿속이 지끈거린다. 어제 마신 소주가 아직도 위안에서 출렁이는것 같다.

오늘이 몇일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녀가 떠난 날짜도 또한....



꼭 일년이 된것 같다. 작년 초복에 그녀를 만났고 그녀가 떠나간후의 오늘

도 초복. 일년인가. 어제까지는 억수같이 비가 오다가 초복인 오늘은 가을

하늘 마냥 구름이 높고 날씨가 맑다. 몸이 으스스 떨린다. 아마 폭풍 전야

의 고요함같은 것일까. 아무 생각없이 냉장고를 열어 본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냉기를 가슴 가득히 들여 마신다. 문득 몸을 식혀야 한다고 느껴서

이다. 잠시 그녀 생각을 잊은채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 생각없이 살아

가는 설탕덩어리 같다고. 생각없이 자신이 무슨 색인지도 관심없고 굵은지

얇은지도. 냉장고 문을 닫고 다시 하늘을 보았다. 기분 나쁠정도로 날씨가

좋다. 불공평하다는 느낌이다. 그녀가 떠날땐 비만 죽죽 내리긋다가 떠나고

나니 구름이 싹 걷히다니. 괘씸한 노릇이다.



책장에서 책을 한권 꺼낸다. CLOUDY. 맘에 드는 제목이다. 내용은 더욱 맘

에 든다. 나도 문득 망명**하고픈 생각이 든다. 삶으로 부터. 아무 페이지나

펴고 글자들의 나열에 쓰윽 눈을 돌린다. 한두 페이지를 읽다 방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이제 고작 11시 40분이다.



아무생각없이 TV를 켠다. 기상 캐스터가 밤부턴 다시 장마가 시작될거란다

문득 생각한다. 밤에 또 한명의 여자가 불쌍한 남자곁을 떠나나 보군. 이런

생각을 하며 히죽 웃는다. 장마때 채인 남자들의 모임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기 예보를 들으니 한결 기분이 좋다. 더이상 그녀의 생각도 떠올리지 않

는다. 그걸 깨달았을때 무슨 큰 죄를 짓것 마냥 괴로워 했다. 그녀의 얼굴

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일까? 고갤들어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다. 5시

간이라는 시간이 사라졌다. 마치 어제밤부터 오늘 오전 11시가 존재하지 않

은것처럼.



일기예보 말대로 밖의 하늘은 우중충해지고 있다. 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

고 있다. 밖의 날씨를 미소띤 얼굴로 언제 까지나 바라보고 있으리라. 갑자

기 전화 벨이 울린다. 받지 않는다. 이런 기분 좋은 시간에. 곧 비가 내리

기 시작하면 또 한 커플이 헤어지고 말텐데.. 어찌 전화에 신경을 쓰랴. 자

동 응답기가 대신 받는다. 그녀에게서다. 정신이 확 든다. 그러나 몸은 움

직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기 있는걸 안다며 8시에 이리로 오겠다고 한다. 딸

깍. 끊어졌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6시다. 2시간 후에 그녀가 다시 내곁으

로 온다. 믿기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녀가 온다. 너저분한 집안을 치우기 시

작했다. CLOUDY가 보인다. 한참을 표지만 보고 있다가 쓰레기 통에 넣어 버

린다. 망명이라고..? 그녀가 다시 내게 오는 데 망명이라고 ...? 집안을 다

치우고 나니 7시 30분이다. 30분 후에 그녀가 온다. 쓰레기를 대문옆에 쓰

레기 수거함에 버리고 하늘을 본다. 다시 맑아 진것 같다. 대문 앞에서 기

다리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오는 모습을 처음부터 볼 수 있을테니까..





그녀는 오지 않는다. 지금은 9시 30분이다. 왜일까? 차가 막혀서 일까? 아

님. 문득 옆의 쓰레기 수거함에 눈길이 간다. CLOUDY가 보인다. 하늘을 올

려다 본다. 해도 지고 이제는 구름들만 잔뜩 모여있다. 마침내 깨달았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억수같이 쏟아진다. 비가 온다. 그리고 한 남자가 채

인다. 비가 온다.장마가 다시 시작되었다.................



***



옆집의 부인이 황급히 빨래를 걷으러 밖으로 나왔다. 눈에 이상한 것이 띤

다. 마치 사람이 녹아내린후 남겨진 옷가지같은 모습이다. 억수 같은 빗물

에 녹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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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Fascinate: 매혹시키는,(남자를) 녹이는 매력이 있는

**망명:일본의 작가 쓰지 히토나리가 쓴 소설 CLOUDY에서의 주요 모티브.

주인공은 갇힌세상에서, 도쿄에서, `망명'하고픈 충동을 지닌 사내이다.





그럼...



본문 내용은 10,45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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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2/27/2025 10: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