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끄적끄적 77 PC방에서... (1999-09-12)

작성자  
   achor ( Hit: 1332 Vote: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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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끄적끄적

『칼사사 게시판』 34229번
 제  목:(아처) 끄적끄적 77 PC방에서...                              
 올린이:achor   (권아처  )    99/09/12 07:35    읽음: 40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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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방에서 밤을 새운 건 처음이다.
  물밀듯이 밀려왔던 피곤함은 이제 자연스러움이 되어
  더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성훈은 연신 깨지면서도 StarCraft에 빠져있고,
  난 연신 타자방 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정영은 이미 뻗어 잠들어 있고.

  손가락이 끊임없이 버벅거리는 것과
  눈 앞이 뿌연 것만 제외한다면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

  눕게 된다면 바로 잠들 것 같지만
  아직은 견딜만 하다.

  렌즈 둘째 날.
  아침, 결국 끼지 못한 채 출근하여 힘겹게 꼈다.
  그리고 24시간 가량이 흐른 지금까지 굳건하다.

  처음 렌즈를 살 때 난 칼라를 주문했었다.
  그런데 연속 착용이 가능한 칼라 렌즈는 그 가게에 없다고 했다.
  그 땐 칼라와 연속 사이에서 고민했었지만
  연속을 선택한 지금, 난 후회 없다.

  내가 만약 연속을 고르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렌즈를 끼고 있지는 못했을 테니.

  이제는 황당한 만남에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다.
  아무리 16살짜리 소녀라도,
  아무리 부모님, 고모, 이모 등 집안 식구를 모두 대동한 만남이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

  여기는 까치산.
  이 익숙치 않은 곳에서 아침을 맞이할 거란
  상상을 했던 적은 없다.

  누군가 만날 걸 기대했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급해졌고, 허무해졌지만
  막상 모든 게 끝난 지금은
  그냥 편안할 뿐이다.

  드디어 약속된 일요일이다.
  강요는 없다.
  단지 기다릴 뿐이다.

  인연이 없다면 없는 대로,
  스파게티는 계속 찾아나가야 하겠지만
  힘들게 공을 들여 노럭할 생각은 없는 것.

  멸시로써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신화 속의 시지프처럼
  신들의 멸시를 오히려 멸시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부단한 용기가
  내겐 없는 것일까?

  어쨌든 이제는 자야한다.
  난 잠을 자둬야한다.
  그렇지만 여기는 까치산. 까마귀산도 아닌 까치산.
  까악, 까악.

  오는 9월 15일은
  X-mas 100일 전이란 얘기를 들었다.
  96년이던가 97년이던가,
  이 무렵 사랑을 갈구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가을에는 사랑을 해야겠지만
  성급하게 흩날릴 필요는 없을 게다.

  집에 가기가 귀찮다.
  렌즈 빼는 것도 걱정된다. 아, 젠장.
  성훈, 이 자식은 도대체 언제 집에 갈까?

  사랑을 희화화하는 장난이
  꼭 사랑을 모독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런 오해에 사로잡혀서
  괜한 자존심을 세워보는 건 무의미하다.

  사랑은
  마음이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운명도 잘 모르겠다.
  이 장구한 대담이 끝날 무렵엔
  어느 정도 정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커다란 헤드폰을 낀 채 음악을 듣는다.
  최신가요들이 반복된다.

  엄정화의 Festival, MV를 보는 건 고통이다.
  왜 가을이 다가오는 이 때까지 인기를 지속하여
  지난 여름이 생각나게 하는 건지...
  쪼그만 엄정화가 촉촉하게 다가온다.
  물에 젖은 머리결이 유달리 섹시하다.
  그런데 몸매는 별로인 것 같다.

  Y2K는 교묘한 상업성의 극대화처럼 느껴졌었는데
  헤어진 후에,는 계속 들으니 듣기 좋다.
  정말 너무나 미안해...
  지금 흘러나오는 가사다. 그런데 뭐가 미안할까.

  한스밴드는 너무 예뻐졌다.
  그 둘째. 예쁘다고 말하는 게 아주 어울리는 아이인 것 같다.

  궁금하다.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 드디어 끝났나 보다.
  이제 집으로 가야지... 휴우...

  자. 그럼.










                                                             98-9220340 권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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