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는 바쁜 사람에게, 나의 존재를 언제고 확인 시
켜줄 수 있는 문명의 이기라며 그 당위성을 나름대
로 설명하며 개통했던 작년 겨울, 이젠 그 삐삐의
진동, 발신음 모두가 구속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남들은 다 그런 시절 겪었노라며 나에게 자랑하듯이
야기하기 시작한다. 내가 그걸 느끼지 못했던 건 내
가 어리기 때문이었을까.
스물 네 시간 동안 잠 속에 있으면서 많은 꿈을 꾸
었다. 사실, 그 많은 시간을 피곤함에 잤던 건 아니
었다. 다만, 눈을 뜨면 내가 살고 있던 일상으로 복
귀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똑같은 삶, 똑같은 내용들의 연속으로 가득찬 일상,
그리고 그 일상에서 나를 부르는 어느 사람의 삐삐
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