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된 내 병원생활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병실이 아닌 응급실에서
무척이나 불편하였지만 나보다 더 고생하셨던 어머니,
매일같이 찾아와 큰 도움을 주었던 성훈이,
그리고 간간히 찾아왔던 소중한 친구들...
수술 날짜는 4월 4일이었다.
숫자는 그리 좋지 않았다.
미신이지만 말이다.
4월 3일 병실로 올라갔고,
많은 친구들과 더불어 수술을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었고,
난 그를 극복하려 무척이나 노력하였다.
영미가 준비한 음악으로 수술 하루전의 밤을 편안히 보냈고,
드디어 4월 4일 수술 시간이 왔다.
오전 10시
수술은 시작되었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서 수술대 위에 누운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후론 전혀 기억이 없다.
깨어나 보니 병실이었고,
가슴이 깨질 듯한 통증만이 남아있었다.
어쨌든 수술은 성공이라는 말을 들었고,
나 역시 빨리 회복되어 갔다.
다른 사람보다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들은 나는
좀더 빨리 호수를 빼고 퇴원될 예정이었고,
4월 8일 호수를 뺐다.
예정대로라면 난 10일에 퇴원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의사가 달려오더니
어떻게 된 일이나며 바로 다시 처치실로 끌려갔다.
그리곤 다시 마취 후 호수 재 삽입 작업이 시작됐다.
뒤에 급한 환자가 기다리고 있어서
마취도 안 된 상태에서 호수를 끼기에
난 저항했으나 다짜고짜 해버리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고, 끝나고나니 하는 말이
'마취가 조금 안 된 듯 했어.'
으휴 열받어... --+
다시 병실에 왔더니
급한 환자가 있어서 병실이 필요하다고 여러 환자들에게
양애를 구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부탁을 했는데
사실 난 수술도 실패한 상황에서 무척이나 기분이 안 좋았지만
어머님의 권유로 우리가 양보하기로 하곤
다른 병실로 이동을 했다.
심장병 환자들이 모여있던 그 곳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상당히 이상한 곳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
병실에서 보는 창밖의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 때부터였다.
항상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말을 들어오던 나이기에
곧 나갈 것이다란 희망이 있었으나
수술 실패와 기일없는 연기는
퇴원예정일이었던 4월 10일에 이르러서는
내 눈에 눈물을 고이게 만들었다.
'절대안정'이란 4글자가 붙은 이후
앉을 수도 없었던 것은
나를 미칠 지경에 이르게 했다.
24시간 누워서 꼼짝하지 못한 채
창밖의 따스한 햇살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괴로웠고,
그렇게 세상이 아릅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함부로 죽음을 논했던 점,
함부로 생명의 가치를 업신 여긴 점,
함부로 잔인함을 즐긴 점...
얼마나 겁없고, 단편적인 사고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은 흘러갔다.
며칠 수 의사로부터 앉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행복감은 아마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게다.
적어도 앉아서는 책이라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꽤 많은 책들을 접했다.
내가 필요한 책을 적어주면 어머님께서는 어김없이 다음 날
책을 구입해 오셨고, 그런 식으로 조금이나마 답답함을 이겨나갔다.
어느 정도에 이르자 더이상의 상황 진전은 없었다.
결국 의사들은 단기간 완치가 불가능하다란 결론을 내리고는
나를 퇴원시키려 했다.
우선 퇴원한다란 사실이 기쁜 나는 찬성했지만
부모님은 완치 때까지의 입원을 원하셨고,
병원에서는 괜찮다는 말로 반대했다.
결국 다시 2번째 호수를 뺄 때 역시
공기가 조금 들어가는 안좋은 결과가 났지만
그래서 퇴원을 고집했다.
그렇게 결국 4월 21일에 3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였다.
하지만 병실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