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이디가 아니면 글을 남기고 싶지 않았으나 너무도 오랫만의 대한 이 화면이
너무도 아름다워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게 됐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24일 새벽 경원에게 남긴 '위급하다'란 음성이
내가 아프다라는 얘기로 와전되었는 듯 하다.
그간 너희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평생을 통해 너희들이 겪을 수 없을 것이라는
섯부른 오만에 빠질만큼 독특한 경험을 하고 왔다.
모든 외부와의 연락은 두절한 상태였지만
다만 성훈을 그 와중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무척이나 행운이었다.
약 만 24일 간의 평생 잊을 수 없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피서로
건강이 악화되었기는 하나 건강에 큰 영향은 없는 듯 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올 여름 6월에 성훈과 여행을 떠난 것을 제외하고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바다를 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조만간 난 바다로 떠날 것이다.
24일 간 난 많은 생각과 경험을 쌓고 왔다.
일단 학교는 잠정 중단으로 결정지었다.
현재의 내 상태라며는 더이상의 학업은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항상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에 내가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평생토록 너희들을
다시는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또한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도움은 전혀 받고 싶지 않았으나
만일 아버님의 권력이 없었다면 역시 평생토록 너희들을
다시는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간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너희들과의 만남이었다.
너희들이 무척이나 그리웠고,
너희들과 함께한 추억이 24일을 견뎌낼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어제 다시 자유를 찾은 이후 너무도 고마우신 부모님과 함께 자리를 한 후
오늘 바로 너희들과 만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무척이나 많지만
지워질 이 글에서는 그만 접어두도록 하겠다.
또한 오늘 너희들을 만나 너희들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은 없다.
조만간 achor1 아이디가 살아나면 스스로 하고픈 얘기들을 해 나가도록 하겠다.
항상 신경써준 친구들, 후배들 모두 감사하고,
정말 어려운 경로를 뚫고 연락을 해 낸 성훈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이다.
또한 여러모로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던 선영 역시 고마움을 전한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희들 역시 운명을 믿지 않을 지 모르겠으나
이상하리만치 놀랍게도 나의 입원과 이번 사건은 예정되어 있었다.
또한 9,10월에 한차례 이런 식의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내 개인적인 측근의 말은 미신이라는 말로 무시하기만은 힘들다.
어쨌든 너희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기쁘고,
항상 너희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에 감사할 줄 알기를 바란다.
3672/0230 건아처
1997년 8월 18일 12시 45분 작성 조회수 46
예정한대로 8월 18일 난 이 글을 삭제할 수는 없었다.
천성적 게으름으로 아직 아이디를 못 살렸을 뿐만 아니라
내 신용보다 내 글을 더욱 사랑함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랫만의 통신에서 난 지난 추억들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어느 새 잊혀졌다고 생각했었던 많은 부분들이
막상 대하고 나니 너무도 애뜻하게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제 본 개중 좋아하는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감옥에 있으면 그 무엇보다도 깔따구와 부모님이 생각나"
님이 없는 내가 생각할 깔따구는 없었지만
지난 추억들이 아련히 떠올랐었다.
그리고 오늘 지난 흔적들을 되돌아 보며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만일 지금 이 순간 내 아이디가 살아있다면
난 너무도 많은 글들을 끄적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조순의 대선출마 환영이나 재상영하는 MTV 드라마 질투에 대한 회상,
그외에도 수많은 유치장, 구치소에서의 기억들...
구치소에서 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왔다.
그리곤 방금 전 난 배운 바대로 아처제국 청소를 했다.
규칙적이고 획일화된 행동이 여러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성실하게(꼭 성실과 획일이 동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하는 것에
난 어느 정도 수용하겠다고 구치소 안에서 다짐을 했건만
막상 다시 자유를 찾은 지금 난 예전의 방탕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군대에 가는 것이 더욱 싫어졌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세상이 너무도 그리웠기에...
다시금 그런 그리움을 겪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조만간 가야만 한다.
12월이 예정이긴 하지만 이미 휴학을 결정한 상태이기에
더욱 앞당겨 질 수도 있다.
내일 난 병원에 간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진 듯 해서 가보는 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태가 좋다고 나오면
군대가 조금 앞당겨 질 테고,
상태가 안 좋다고 나오면
다시금 병원의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으니
나의 세상과의 이별은 조만간의 필연일 수 밖에 없다.
난 군대가기 전의 마지막 20대 초반을 보람되게 살고 싶다.
구치소에서 많은 계획을 했건만
역시 마찬가지로 지금의 나라면 그 계획은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다.
이렇게 의지가 약한 내가 무슨 나와의 약속을 지킨단 말인가!
현재 이 글의 조회수는 46이다.
과연 누가 이 글을 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항상 나의 이렇게 숨겨진 글들을 찾아내 온 성훈 역시
결코 이 글만큼은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지난 글들을 모조리 후에 읽어대는 진 정도가 읽을 듯 한데
다닥다닥 붙인 글로 무척이나 긴 이 글에
많은 관심을 갖고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훈이 휴가로 나온 것을 알았을 때
난 반드시 어떤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 생각했었고,
어제 난 이와 같은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와 그가 사랑했던 여인만을 위해 쓴 그 숨겨진 글을 읽으며
난 더욱 성훈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같이 구치소에 수감된 사람들 중
한 여자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들어올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난 그가 너무도 부러웠다.
그런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
작년의 여름이 생각난다.
난 바다가 좋다.
무더위를 바다에서 보내고 싶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고백하자면 난 너무도 이중적이고 너무도 다중적이다.
이런 내 자신에 실망하고 있다거나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로는 그런 모습이 좋을 때도 있고, 때로는 싫을 때도 있다는 말이다.
난 용기가 없다.
난 사랑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
그 여자에 관해 이렇게 숨겨진 형식으로 글이 남겨졌었으나
유일하게 성훈이 찾아낸 후
그 글을 그 누구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곳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구치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었지만
그녀의 생각도 상당부분 차지했었다.
난 조그만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편지를 썼으나
보낼 수는 없었다.
상황이 안 좋기도 했지만 용기가 부족했기도 하다.
군대가기 전의 언젠가 난 그녀에게 꼭 내 마음을 전하고 가고 말테다.
그렇지 않는다면 난 영원히 그러했던 내 자신을 너무도 후회하고 말테니 말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외쳐보고 싶다.
그렇지만 혹시 누가 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다.
아직은 시기가 이르다.
시간이 흐른 후 이곳을 통해 당당하게 외쳐보겠다.
다짐해 본다.
구치소에서 사람들을 대한 이후
여성을 보는 시각이 변화되었다.
물론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나
더욱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순결을 고려치 않는
free sex 자세는 단지 성적 욕구만을 향상시켰을 뿐이다.
또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순결한 여성은 적다는 것을 느꼈다.
(순결한 여성을 고집하는 편견은 전혀 없다)
구치소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 이런 것들을 뭐하러 배우나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고대부터 중시된 역사, 지리 따위의 것들이
상식으로 너무도 대단한 것이었다.
난 대학생이다.
중졸조차 드믄 그곳의 사람들에게 대학생이란 존재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듯한 만물박사였으나
나는 결코 그렇지 못했다.
내게 남은 얼마간의 20대 초반의 삶에서는
경험 뿐만 아니라 지식을 넓히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ps. 이렇게 편집된 이 글 역시 아이디가 살아나면 처분할 예정이다.
다만 완전히 없앨 생각은 없다.
난 내 글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적당한 위치로 이동시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