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과거에 얽매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98년 4월 21일, 오늘은
내가 퇴원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그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절이
벌써 1년 전 이야기라니... 휴우...
그 시절에는 참 많은 생각과 계획을 했었는데
막상 지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것들과는 전혀 동떨어진 느낌이다.
어쨌든 난 잘 살고 있으니 됐다.
空日陸森 Fucking 우레 건아처
『소모임-칼사사 (go SGCOL96)』 19565번
제 목:(아처) 3주간의 병원 후기 1
올린이:achor (권순우 ) 97/04/25 07:12 읽음: 48 관련자료 있음(TL)
4월 1일 새벽이었다.
난 오늘이 만우절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 좋은 호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나의 통증은 3월 30일 어느 낮 갑자기 시작되었다.
이미 그 며칠 전부터 감기와 몸살, 그리고 치통으로
내과와 치과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흔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갑자기 폐로부터 울려 나오는 강한 기침이 2번 나온 후
가슴이 무척이나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숨쉬기가 힘들어 걷기조차 힘겨웠으며,
가슴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영미를 만나자마자 잠깐 커피를 마시며 쉬려했지만
고통은 더 심해질 뿐,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어렵게 집으로 돌아온 난
누워보려 했으나 누을 수가 없었다.
누을 때 가슴의 고통이란 참아낼 수가 없었기에...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홀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알고 싶은 냉혈인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 하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기에 집에 연락을 했고,
다음 날 함께 병원에 가기로 했다.
이 부분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고통은 내 자존심이 결코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란 사실이다.
다음 날 엑스레이를 찍고, 조금 검진을 받았으나
숨이 차긴 했지만 왠만큼 걸어다닐 수 있던 나를
의사조차 그리 큰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금 힘들게 잠이 들었다가
드디어 잔인한 4월이 시작되었음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비록 몸은 아펐지만
내 장난끼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만우절 장난을 칠 생각으로
어제 의사가 폐에 구멍이 뚫렸을 지도 모른다는 말을
기정사실화 한 후 결과를 생각했다.
사실 이왕의 거짓말인 만우절 장난이라면
확실하게 죽음으로 하고 싶었지만
아직 실제 병의 결론이 안 난 상황은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수술도 아닌 요양이 되어버린 거짓말로 끝맺고 말았다.
그렇게 장난을 친 후 다시금 잠을 청했는데
아침 일찍 영미가 온 것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쉽게 걸려들고 만 게다.
푸하하~
영미의 울음과는 상관없이
난 만우절의 장난을 계속 했다.
함께 무척이나 슬픈 표정으로
삶의 마지막을 대하듯이 행동하였고,
얼마남지 않은 수업을 듣고 싶다고 말을 하고
함께 수업도 듣고, 정말 간만에 레포트까지 써 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마지막을 슬퍼하고 있을 무렵
성훈이 찾아왔다.
성훈은 내 만우절 거짓말 글은 못 봤지만
전에 조금 아팠던 것이 걱정되어 찾아온 것이었다.
19시 쯤이었을까?
갑자기 집에서 호출이 왔다.
결과가 나왔겠거니 하고 집에 전화를 했더니
어머님께서 울고 계셨다.
빨리 고대 구로병원으로 오라고 울먹이셨다.
늦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실제 죽음을 대하니 정말 '쇼킹'이었다.
그토록 죽음에 초연하고 싶었건만...
눈물이 쏟아졌다.
아직 하고픈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뿐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을 정리하고 떠나지 못함이 아쉬웠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앉아있다가
영미를 집으로 보내고 성훈과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엑스레이를 의사가 보더니 환자를 막 찾았다.
저라고 말을 했더니
어떻게 걸어다닐 수 있냐고 반문을 하고는
바로 응급실 침대에 눕힌 후
커튼을 치고 마취를 한 후
50% 성공률이라는 수술 확인서에 어머님의 도장을 확인한 후
바로 호수를 가슴에 꽂기 시작했다.
이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해서
폐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으며,
그렇게 걸어다닐 수 있던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게 갑작스럽게 내 병원생활은 시작되었고,
그 만우절 거짓말이었던 내 마지막 글은
그 글보다 더욱 심하게 되어
나를 닥치고 말게 된 것이었다.
3672/0230 건아처
『소모임-칼사사 (go SGCOL96)』 19566번
제 목:(아처) 3주간의 병원 후기 2
올린이:achor (권순우 ) 97/04/25 07:15 읽음: 53 관련자료 있음(TL)
그렇게 시작된 내 병원생활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병실이 아닌 응급실에서
무척이나 불편하였지만 나보다 더 고생하셨던 어머니,
매일같이 찾아와 큰 도움을 주었던 성훈이,
그리고 간간히 찾아왔던 소중한 친구들...
수술 날짜는 4월 4일이었다.
숫자는 그리 좋지 않았다.
미신이지만 말이다.
4월 3일 병실로 올라갔고,
많은 친구들과 더불어 수술을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었고,
난 그를 극복하려 무척이나 노력하였다.
영미가 준비한 음악으로 수술 하루전의 밤을 편안히 보냈고,
드디어 4월 4일 수술 시간이 왔다.
오전 10시
수술은 시작되었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서 수술대 위에 누운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후론 전혀 기억이 없다.
깨어나 보니 병실이었고,
가슴이 깨질 듯한 통증만이 남아있었다.
어쨌든 수술은 성공이라는 말을 들었고,
나 역시 빨리 회복되어 갔다.
다른 사람보다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들은 나는
좀더 빨리 호수를 빼고 퇴원될 예정이었고,
4월 8일 호수를 뺐다.
예정대로라면 난 10일에 퇴원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의사가 달려오더니
어떻게 된 일이나며 바로 다시 처치실로 끌려갔다.
그리곤 다시 마취 후 호수 재 삽입 작업이 시작됐다.
뒤에 급한 환자가 기다리고 있어서
마취도 안 된 상태에서 호수를 끼기에
난 저항했으나 다짜고짜 해버리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고, 끝나고나니 하는 말이
'마취가 조금 안 된 듯 했어.'
으휴 열받어... --+
다시 병실에 왔더니
급한 환자가 있어서 병실이 필요하다고 여러 환자들에게
양애를 구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부탁을 했는데
사실 난 수술도 실패한 상황에서 무척이나 기분이 안 좋았지만
어머님의 권유로 우리가 양보하기로 하곤
다른 병실로 이동을 했다.
심장병 환자들이 모여있던 그 곳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상당히 이상한 곳이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
병실에서 보는 창밖의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 때부터였다.
항상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말을 들어오던 나이기에
곧 나갈 것이다란 희망이 있었으나
수술 실패와 기일없는 연기는
퇴원예정일이었던 4월 10일에 이르러서는
내 눈에 눈물을 고이게 만들었다.
'절대안정'이란 4글자가 붙은 이후
앉을 수도 없었던 것은
나를 미칠 지경에 이르게 했다.
24시간 누워서 꼼짝하지 못한 채
창밖의 따스한 햇살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괴로웠고,
그렇게 세상이 아릅답게 보인 적은 없었다.
함부로 죽음을 논했던 점,
함부로 생명의 가치를 업신 여긴 점,
함부로 잔인함을 즐긴 점...
얼마나 겁없고, 단편적인 사고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은 흘러갔다.
며칠 수 의사로부터 앉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행복감은 아마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게다.
적어도 앉아서는 책이라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꽤 많은 책들을 접했다.
내가 필요한 책을 적어주면 어머님께서는 어김없이 다음 날
책을 구입해 오셨고, 그런 식으로 조금이나마 답답함을 이겨나갔다.
어느 정도에 이르자 더이상의 상황 진전은 없었다.
결국 의사들은 단기간 완치가 불가능하다란 결론을 내리고는
나를 퇴원시키려 했다.
우선 퇴원한다란 사실이 기쁜 나는 찬성했지만
부모님은 완치 때까지의 입원을 원하셨고,
병원에서는 괜찮다는 말로 반대했다.
결국 다시 2번째 호수를 뺄 때 역시
공기가 조금 들어가는 안좋은 결과가 났지만
그래서 퇴원을 고집했다.
그렇게 결국 4월 21일에 3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였다.
하지만 병실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이유는...
아마도 고통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정...
3672/0230 건아처
『소모임-칼사사 (go SGCOL96)』 19567번
제 목:(아처) 3주간의 병원 후기 3
올린이:achor (권순우 ) 97/04/25 07:16 읽음: 49 관련자료 있음(TL)
퇴원할 때 원서를 작성하면서
내 불행의 미신적인 이유를 볼 수 있었다.
(수술한 날이 4월 4일이란 점을 기억)
병원 회원 번호가 다름다닌
00838에다가 666이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물론 미신이란 것은 알지만,
4/4와 666...
뭔가 꺼림직... --+
불행은 퇴원 후라 해도 끝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준 약이 몸에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온몸에 반점이 생겨 퇴원한 지 24시간도 못 되어
난 다시 병원으로 갔다.
간단한 치료와 다시 약을 받고 왔으나
또 다시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다.
그리곤 다음 날 또 병원 행...
이번엔 치료 중에 머리가 핑 돌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잠시 누워 있으니 괜찮아졌으나
바로 달려오신 아버님께서는 다시금 입원을 주장하셨고,
병원측에서는 별다른 치료책이 없다는 말로 또 반대하였다.
결국 다시 특진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잔인한 4월과의 투쟁은 전개되었고,
결국은 나의 승리로 끝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 모로 많이 도와줬던 성훈, 영미, 용민
모자른 피를 대신 해줬던 영재, 영미
그리고 걱정해 줬던 너무도 소중한 친구들
마지막으로 나보다 더 애를 쓰신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간접체험이 얼마나 헛점 투성인가를
직접 몸으로 깨달은 나는
적어도 앞으로의 내 삶에 있어서 지금의 시간이
소중한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보다 더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항상 그들을 돕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