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성은 20살이란 자신의 나이에 용기를 가졌다. 항상 미숙하기만 했고, 부모
에게 의존하였던 10대의 시절은 분명히 아니었다. 훈성은 자신이 20살이란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제는 여성이
아니었다. 자신감과 용기가 넘치는 남성이었다. 그러기에 자신의 마음속에
항상 생각나는 그녀, 미다에게 자신있게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느꼈다.
훈성이가 운영하고 있던 꽃가게는 결코 사정이 괜찮은 편은 아니었다. 아니
사정이 너무 안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훈
성은 항상 부지런하였다. 새벽 공기를 느끼면서 일찍 문을 여는 훈성은 항상
상쾌한 기분이었다. 언제나 훈성이 빠알간 장미에 물을 줄 때쯤이면 긴 치마
를 입은 미다가 살짝 웃으며 나타나곤 했다. 빠알간 장미! 훈성은 이상하게
도 장미에 물을 줄 때 미다가 나타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일부로 다른 날보다
일찍 물을 주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쩌나 하루라도
안 오는 날이면... 훈성은 자신이 미칠 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훈성은 장미에 물을 주다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미다
가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미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훈성
도 환하게 웃어 주었다.
"오늘도 또 블랙로즈겠죠?"
미다는 대답해신 또 다시 환하게 웃어주었다. 훈성도 하얀 이빨을 보이며 마
찬가지도 대했다. 둘 사이에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서로는 잘
알고 있었다.
나날이 훈성과 미다의 사이는 가까워져 갔다. 훈성은 언제나 미다 생각 뿐이
었다. 20살! 훈성은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내가 데이트를 신청하면 미다는 받아줄까?'
훈성은 자신의 자신없는 모습이 싫었다. 겸호처럼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자신
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그런 용기, 박력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훈성은 아
직 그럴 수 없었다. 남자란 것은 참 괴로운 것임을 조금씩 깨닫기도 하였다.
미다도 훈성과 단둘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훈성을 생각할 때마다 느껴지는
가슴의 따뜻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지만 미다 역시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미다는 연애에 관해서는 전문가란 소리를 듣고 있는 친구 봄새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글쎄. 좋은 방법이 있긴 한데..."
"뭔데? 말해 봐."
"맨입으로? 짬뽕 사주면 말해주지."
"그래그래. 짬뽕 사줄께. 말해봐."
"뭐냐 하면, 몇 일 있으면 크리스마스 날이잖아. 그러니까 그 날을 이용하는
거야."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러니까 이번 크리스마스 날에도 꽃을 사러 그 가게에 찾아 가란 말이야.
이 바보야. 그리곤 HOLLY를 25송이 사서 그 남자에게 안겨 주란 말이야."
성훈은 이번 20살의 크리스마스만큼은 외롭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녀, 미다와 함께 하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다.
훈성은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소심한 훈성이었지만 그렇
게 외로움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보다는 용기를 내 보고 싶었다.
내게 정말 소중한 미다에게,
미다야, 넌 아마도 모르고 있겠지.
그래. 그럴꺼야. 여지까지 난 정말 내 마음도 표현 못하
는 바보였으니깐 말이야.
이제는 난 더이상 내 감정을 못 참겠어. 그래. 솔직해
질께.
미다야!
난 널 사랑해
훈성
그토록 사랑했던 훈성의 편지를 받은 미다는 황홀할 지경이었다. 매일 밤을
훈성 생각에 잠 이루기가 힘들었는데... 가슴이 설레었다. 이제 앞으로 일주
일이었다. 일주일만 지나면 크리스마스, 그와 만나는 날인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너무도 지루하였다. 훈성은 그 날을 기대하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김훈성씨!"
갑자기 훈성의 꽃가게에 건장한 남자 여러 명이 들이닥쳤다.
"저 누구신가요?"
"김훈성씨 맞죠?"
"예. 맞는데요. 누구시죠?"
순간 그 남자들은 훈성을 둘러싸더니 수갑을 채웠다.
"어. 왜들 이러십니까?"
"김훈성씨. 당신은 너우누리에 돈을 안 내셨기에 체포됨을 알려드립니다. 당
신에게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묵비권이 있고, 변호사를 선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 가시죠."
이렇게 훈성이가 강제연행되어 간 날은 24일 저녁이었다.
미다는 훈성과 만날 내일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일 입을 옷을 이옷
저옷 거울에 대보고, 머리도 이리저리 옮겨 보았다.
그렇게 그날 밤은 지나갔고, 미다는 아침 일찍 훈성의 꽃집으로 나섰다. 하
지만 굳게 닫혀만 있는 꽃집문. 미다는 기다렸다.
너무도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미다가 느끼기에 너무도 긴 시간들.
조금이라도 빨리 훈성을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은 꼭 닫힌
채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날은 싸늘해 갔고,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
작하였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1시간, 2시간... 시간은 흘러 저녁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훈성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어둑어둑해 지고 있을 무렵, 미다는 조금씩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신이 바보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훈성의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하니 그동안 혼자 가슴아퍼했던 기억들이 너무도 허망하게 느껴졌다. 포
기의 눈물. 미다는 훈성을 아펐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의 남
자가 아닌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만이 흘렀다.
그 때 어둑어둑한 골목에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미다는 깜짝 놀랐
다. 그는 훈성이었던 것이다.
"미다! 미안."
무척이나 힘겨워하는 듯 보였던 훈성의 첫마디였다.
"무슨 일 있던 거야?"
"시간이 없어. 곧 경찰들이 올꺼야. 미다! 꼭 만나서 하고 싶었던 말이 있
어."
"......"
"미다! 사랑해"
훈성의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그의 입술이 미다의 입술을 덮쳐왔다. 미다는
피하지 않았다. 너무도 뜨거웠다. 너무도 달콤했다. 이 둘에게는 어떠한 설
명도 필요치 않았다. 미다는 성훈을 보자마자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의 뜨거운 입술! 이걸로써 그들은 사랑이란 단어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
다. 너무도 행복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