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문화일기 106 천마총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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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212 Vote: 1 )

+ 천마총 가는 길, 양귀자, 1995, 6/7, 소설

<PROLOG>

양귀자는 나와 맞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쉽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난 70-80년대 치열한 운동권 이야기나
이해하지 못할만큼 커다란 깊이가 있는 책이 좋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구입했던 이유는
"80년대라는, 이제는 어느덧 과거형으로 기록되고 있는 시대가 있었다"
라는 구절이 유일한 원인이었다.

70년대, 그리고 80년대란 구절만으로도
난 흥분하고 만다.

머리속엔 그 시절의 치열한 모습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감상>

생각할 시간이 없어지면
말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게 아니라면 가벼운 말장난들의 나열뿐.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미 난 생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읽는동안에도 난 철저히 방관자의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전혀 내가 동경하지 않는, 80년대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끝까지-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읽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난 학창시절 교실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던 아이가 되고자 한다.
아무 말 없는 그 아이지만 그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때론 잘잘못을 판단하기도 하고, 때론 판단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의 침묵 덕분에 그는 겉보기에 철저한 방관자일 뿐이다.

아무 것도 그가 개입하는 일은 없다.
다만 그저 일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난 그런 방관자가 되고자 했다.
생각을 잃어버렸기에 그냥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선입관으로부터 탈피하여 만물, 그 본모습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양귀자는 내게 비겁자로밖에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이 여러 단편으로 구성된 그녀 최초의 문학선을 읽는동안
난 그녀의 귀에 커다란 헤드폰을 씌여주고는
신해철의 '70년대에 바침'이란 곡을
아주 커다란 볼륨으로 들려주고 싶었다.

90년대는 정말 자유롭긴 자유롭나 보다.
세상의 비겁자들이 당당하게 동굴에서 기어나와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한 양 커다란 목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으니 말이다.

난 비겁한 오렌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닿는다면 난 비겁한 오렌지가 될 것이지만-




<EPILOG>

981102 22:30 80년대... 그녀는 적어도 80년대의 비겁자이다.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98-9220340 건아처


본문 내용은 9,606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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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