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가 지난 밤 여관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부제 : 내가 게임을 한 이유에 관하여...
그 날 집에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내내 [나는 왜 게임을
하였는가]에 관해 생각을 해봤어. 이건 쉬운 일이 아니야.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또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고 말야. 그럼에도 내가 이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건 기존 가치관 속에서 교육받아 온 내가 겪어야 할 당연한
죄책감이 아닌가 생각해.
그렇지만 분명해. 그건 죄가 아니야. 우리는 단지 게임을
한 것뿐야. 아주 흥미로운 게임, Funny Game!
아마도 예전과 달리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은
내 보수로의 회귀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 같단 생각도 해.
그런데 정말, 우리, 아니 나는 왜 게임을 했을까? 궁금하
지 않니? 미안해, 이 궁금증을 참지 못해 내가 배신을 때리
고 말았어. !_! 나는 너희가 지난 밤 여관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자, 하나하나 원인을 규명해 보자구. --;
우선 분명한 사실은 그건 굉장한 흥미로움에서 비롯되었다
는 거야. 아직 우리 세상은 성적 접촉이 자연스러운 사회는
아니잖아. 그걸 어설픈 명분이나마 만들어 놓고 행할 수 있
었으니 일종의 면죄부를 얻게 된 셈이었지.
그런데 또 문제가 되는 건 그 성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
냐에 관한 거야. 함께 게임을 한 너희들, 혹은 그 누구에 대
한 내 감정일까, 아니면 대상에 관계없는 기본적인 욕구일
까?
먼저 너희들을 하나하나 살펴봐야겠어. 만약 너희들, 혹은
너희 중 특정인에게 내 마음이 있었다면 그를 밝혀 내는 게
문제 해결의 핵심 같거든.
우선 인영. 음, 인영, 인영. 아. 인영. 아, 인영이라면 내
가 성적 접촉을 바라고 있을까? 음, 음. 거 참 난해하군.
--; 아, 인영은 내 친구의 애인이었지. 그렇지. 그렇지, 아
직도 친구의 애인이란 이미지가 깊게 남아 있어. 허허. --;
그럼 진. 진이라... 이진은 아닐 테고, 장진, 그래, 장진.
음, 장진. 장진을 안 지는 무려 3년. 3년이란 시간을 통한
익숙해짐 속에서의 성욕이라... 역시 난감하군.
다음은 희진. 희진이라... 눈 작은 희진. --; 맞아, 나보
다 눈 작은 희진. --; 아, 그러고 보니 희진도 내 친구의 애
인이군. 친구의 애인은 껄떡대기 두려운 존재지. 암. 그렇고
말고. --;
마지막 한 사람, 신혜. 신혜는 그 날 처음 만났었지. New
Face는 신비감에서 비롯된 의욕을 주긴 하지만 음, 신혜, 신
혜잖아. 신혜. 동성동본 권신혜. --;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한 것도 아닐텐데. 허허. --;
그 외 민석, 주연, 재원 등 놈팽이들이야 전혀 관심 없지.
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아니고 난 정말 남자들한텐 관심
없어. 정말이야. --+
유력한 용의자는 이렇게 넷으로 줄여졌긴 한데, 음, 다들
미심쩍긴 하단 말야. 흐흠...
하나하나 살펴봤지만 결론이 나진 않아. 다음처럼 나름대
로의 이유가 있거든.
인영, 희진이야 내 친구들의 애인이라는 이미지가 내게 너
무 깊게 남아 있어. 그런데 어쩌면 말이야, 윤리, 도덕적으
로 접근할 수 없는 상태에 게임의 법칙이란 변명거리를 만들
어 죄의식을 희석시킨 후에 행위에 정당함을 부여하려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이건 운명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하는 정도.
진, 그녀는 친구라는 관계 때문에 동물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3년이란 시간동안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정당
한 방어막을 만들어 놓은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고.
그리고 신혜는 음, 조금은 어색할 수 있는 첫만남을 가볍
게 기록할 수 있는 호기, 첫인상에서 오는 신선함을 흠뻑 들
여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거였잖아. 충분히 게
임을 하고픈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암. 그렇고 말고. --;
그렇다면 다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 흠흠...
좋아, 그렇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
자구. 우리가 생각한 두 번째 가정, 그것일 수도 있잖아.
말하자면 난 특별한 대상에 관계없이 기본적인 성욕을 느
끼던 거란 가정.
그 가능성을 충분해. 왜 너희들도 그렇잖아. 찰랑찰랑 바
람이 부는 길가를 지나가는, 혹은 엘리베이터 안에 단둘이
있게 된 낯선 여인의 짧은 미니스커트 속에서 깊은 성욕을
느끼지 않아? 동물적 몸짓만이 난무하는 포르노 속 여자주인
공의 행위를 보며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정욕을 느끼지 않아?
바로 그런 거야. 특별히 그 대상을 알지 않아도 돼. 그저
나와 다른 性이란 데에서 오는 성욕, 그런 게 있는 거지.
어쩌면 내가 게임에 임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을 지도 몰
라.
아, 이런 젠장. 이토록 장구히 생각을 했건만 결국 아무
결론도 못 내리고 말았잖아. --; 도대체 뭐지? 흐흠. --;
음냐, 음냐. --+
그렇지만 만약 특정 대상에게 비롯된 성욕에 근거한 게임
의 참여였다면 오히려 난 그냥 말하고 싶은 기분이야.
"나, 너랑 키스하고 싶어!"라고 말야.
물론 이 시대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 중 가볍게 "그래!"라
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 여자는 감정에 솔직하기보다는
튕기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에 빠져 있을 테니.
뭐 좋아. 하기 싫은 사람한테 구차하게 얻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말야.
아, 그런데 왜 우리는 게임을 했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
구먼. 허허.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냐하, 또 해야
지. 허허. ^^* 재밌잖아. 말 그대로 Funny Game이라구! 내가
본 가장 흥미로웠던 영화, Funny Game만큼 잼있는 일이라구!
그치만 내 여자친구가 이 게임을 하고 있다면, 흑, 슬프긴
할거야. !_!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예전엔 내가 안 그랬잖
아. 그치만 그건 이성으로 감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근거 없
는 관념에 빠져있을 때 일이고. --; 이제는 그냥 자연스러움
이 더 좋아졌어. 마음이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
꺼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