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된 민주주의를 위함이 아닌 자기 지분 챙기기에
급급한 내각제 개헌이 정치적 이슈가 되었고, 여야의
여전한 불협화음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어떻게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누구도 길을 제시하지 못해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경제는
점차 회복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실물경제의
회복까지는 의미하지 않아서 아직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공허한 바람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강요받아야만 했다.
또 고통감수라는 명분으로 행해진 대책 없는 감원으로
대량 실업이 사회를 강타했는데 이는 평범한 소시민을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억압이었다.
더욱 우리를 슬프게 했던 일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핑클이 [淚悲]를 끝으로 사라졌던 일이었는데 아무도
이에 대해 그 어떤 준비도 해 놓지 못해 사람들은 그저
슬퍼하거나 과거를 회상할 수밖에 없었다. 극장가는
어것저것 섞어 놓은 [쉬리]의 세상이었고, 문학계는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뒤틀어진 페미니즘
소설을 위한 자리였다.
그나마 강원도에서 개최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종합 2위를 차지한 게 소시민들의 유일한 기쁨이었는데
그 역시도 짧은 기간으로 인해 어두운 겨울을 밝게 하기엔
충분치 않았었다.
그 해 겨울에는 그랬다.
자유를 잃었다는 핑계 속에 정치에 냉담했고,
무절제한 행동으로 늪에 빠져 있었다.
처음 들어선 사회 속에서 지난날을 그리워했고,
[이진]이란 한 인물에게 모든 걸 사로잡혔기도 했으며
여름을 기약하며 귀찮아하던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입대를 했다.
어둡고 낯선 통로를 지나가야 한다는 것, 깊은 우물에
빠져야 한다는 것, 나이가 들고 난 후에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싫었었다.
그래서 그리움이 컸고, 모든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권태로웠다.
무언가 해야 할 상황 속에서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
지루했고, 따분했고, 두려웠다.
시간을 축내고 있음이 두려웠다.
그 해 겨울은 또,
참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해 어지러웠었다.
그 땐 그랬다.
98-9220340 건아처
제 목:(아처) 그 해 겨울에는, 번호:26900번
올린이:achor (권순우 ) 98/01/04 22:25 읽음: 35 관련자료 없음
1997년에서 1998년으로 넘어가던 그 해 겨울에는,
새 술을 새 잔에 담아야 한다는 듯이 헌정 이후 최초로
민주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김대중 후보는 난파된 한국호의 구원자처럼 떠올랐으며,
보다 진보된 민주주의로의 도래로 사람들은 열광했다.
세상은 온통 'IMF'의 열풍에 휩싸였으며 지겹도록 경제
위기를 실감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질주할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해야만 했고.
경제위기 덕분에 사회는 근검, 절약이 주된 테마였다.
사람들은 움추렸고, 세상은 위축되었다.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었다.
서점가는 여전히 '~가지' 씨리즈로 도배되었고, 영화
'편지'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적혀 주었다. 게다가 관련
시집까지 동반 히트시키기도 하였고. 10대 댄서들의 인기는
계속되었고, S.E.S.는 열광할 대상을 잃은 남성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사람들은 마치 그들을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던
잔치상 앞에서 입을 음식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겨울 최고 인기 스포츠인 농구는 프로 2년째를 맞아
용병과 심판문제로 고전을 했었고, 배구는 모기업의 위기
속에서도 눈물겨운 투지를 보여준 '고려증권'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게 하였다.
그 해 겨울에는 그랬다.
미래를 꿈꾸며 군소후보를 지지했고,
아무런 경제주체가 아니었지만 경제 위기를 실감해야 했다.
또 흔들리는 사회 속에서 쳇바퀴를 굴렸었고,
문화의 참여자가 되고자 노력했었다.
또 배구가 보고 싶기도 했었다.
그리고 입대를 했다.
사회를 떠나는 것이 싫었었고, 나이가 들고 난 후에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싫었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고, 모든 것이 아쉬웠다.
또한 62-3의 생활은 내겐 즐거움이었다.
간섭으로부터의 자유욕 덕분에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으나 삶은 즐거웠다.
비록 끊임없는 라면과 불규칙한 생활, 턱 없이 모자르거나
턱 없이 넘치기만 했던 수면 속에서도 난 행복했다.
잠시동안의 학교와의 이별도 했다.
적극적이지 못했던 학창시절이었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겨울 바다의 기억은 아직 내겐 또렷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