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여성박사1호 반민특위 처벌대상 여성계1호 김활란의 친일
관련자료를 모았습니다. 민족을 배반하고 여성의 이름으로 수많은
우리의 어머니를 처절한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이화여대는 김활란의
망령에 휩싸여 있습니다. 과연 김활란이 여성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김활란이 여성이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심판에 남녀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참고자료>
요즘 내선일체라는 것이 매우 활발한 문제로 되고 그를 위한 실제활동이 행해지고
있습니다마는 이는 매우 좋은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남성들의 활동에 비하여
여성들의 그러한 행동은 아직 뒤쳐져 있는 느낌이 들어서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현재로는 조선의 부인 문제도 내선일체라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그것만이 옳고 바른 현실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내선 부인 동지가 서로 사랑과 이해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
니다.
여성들은 천성적으로 아름다운 감정을 갖고 있으니까 이론보다도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가 사랑을 나누며, 서로가 생활적으로 이해를 나누는 일을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현재 국방부인회나 애국부인회 같은 데서 내선 부인들이 함께 섞여 일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직은 부인끼리의 인간적인 이해와 감정의 융합이라는 단계에까지 완전히 가 있지 못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조선에서도 부인문제가 내선일체라는 커다란 역사 속에서 훌륭한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하고 저는 믿습니다. 과거 조선의 부인운동은 어쨌든 화려한 시기가 있긴 있었습니다마는 이제 와서 생각하면 정말로 구호에 불과한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내선일체의 대업 속에서 정말로 확고하게 현실성이 있는 부인운동이 전개되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 나는 조선의 부인들이 내지의 부인들과 서로 손을 마주잡고 진정한 자매로서 사랑을 나누어간다는 일이 중요하며, 이런 것을 통해서 내선 일체의 일로 남성들과 함께 협력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부인들도 이제부터는 커다란 희망과 신념을 갖고서 부인의 입장에서 열심히 사회 봉사 사업에 진출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동양지광, 1939년 6월호)
* 여성의 무장
저 흑노(黑奴) 해방(노예해방)의 싸움을 성전이라 했고 십자군의 싸움도 성전이라
했다. 그러나 이제 성전은 정말로 내려진 것이다. 동아 10억의 민족을 해방하고
광명으로 인도 하려는 도의의 전쟁이다. 우리 총후의 반도여성은 지금 이 도의 전쟁에 한사람의 투사로서 가담하고 있다는 광영(光榮)을 가졌다. 도의의 전쟁에 여성은 모르지기 도의의 무장을 갖추자는 말이다. 희생의 투구를 쓰고 적성의 갑옷을 입고 긴장과 자각으로써 허리띠를 매고 제일선 장병과 보조를 같이 하여 도의를 무시한 물질 제일주의의 서양문명을 박차버리고 동아의 천지로부터 미영(米英)을 격퇴하여 버리자.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 결성식 부민관 대강당1941.12.27 오후2시)
* 반도여성의 각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허둥지둥 감격에만
빠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지만 어쩔지를 모르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갈래를 못
찾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반도여성은 그저 내 아들 내 남편 내 집이라는 범위에서 떠나보지를 못했다. 떠나볼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자칫하면
국가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도여성에게
애국적 정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지금 까지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귀한 아들을 즐겁게 전장(戰場)으로 내보내는 內地의
어머니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막연하게 부러워도 했다. 장하다고 칭찬도했다. 그러나 이제는 반도여성 자신들이 그 어머니 그 아내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그 각오와 준비가 있는 것인가? 실제로 내 아들이나 남편을 나라에 바쳐보지못한 우리에게는 대단히 막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아들이나 남편을 전장으로 보낼 각오를 가져야 한다. 과연 우리에게 그런 각오가
있을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內地 여성에게 배울 점이 많다. 우리 일본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원인의 하나가 일본 여성의 숨은 힘이라 한다. 말없이 참고 나가는 그들의 힘은 강한 인(仁)의 몇 배의 힘을 가진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가는데 조용한 웃음으로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그저 모방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까지 만드는 그 근본정신을 지니도록 해야한다. 즉 국가를 위해서는 즐겁게 생명을 바친다는 정신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내 남편도 내 아들도 물론 국가에 속한 것이다. 최후에 내 생명까지 국가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국가에 속한 내 남편이나 아들 또 내 생명이 국가에서 요구될 때 쓰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못 쓰인다면 오히려 그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꼬집어 말하자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바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나라의 것을 나라가 쓰는 것이지 내가 바칠 것은 아무것 도 없는 것이다. 잠깐 맡았던 내 아들이 훌륭히 자라서 나라가 다시 찾아 가는 것이다. 나는 그
몇 해 동안에 책임을 다한 것이 즐겁고 그동안 그 아들이 많은 즐거움을 준 것이 감사한 것이고 좀더하면 책임을 다 못하여 나라에 돌려보내서 쓰이지 못했을지도 모를 것을 훌륭히 쓰이게 된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것뿐인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국민으로서의 최대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신시대, 1942년 12월 이화여전 교장 )
* 거룩한 대화혼을 명심 - 적 결멸에 일로매진
...금 8월 1일 부터 수일간은 반도에 징병제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가진 행사가
조선에 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전개되어 새삼스럽게 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일시동인의 황공하옵신 성지에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기회에 대동아 건설을 위하여 동아 10억의 민족을 저 앵글로색슨의 손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우리 황군이 도의의 싸움을 하고 있는 이 때에 반도 청년에 이러한 영예를 내리옵심은 더욱 기쁜 바이며, 또한 행복된 일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배속으로부터 대화혼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존업하옵신 황실을 받들어 모시고 생사를 초월하여 대군을 위하여 순국 봉사하는 그 마음 오직 우리 황국신민만이 특히 제국군인만이 경험할 수 있는 바이다. ....충성된 그 마음을 한결같이 대군에게 바침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대화혼은 3천년간 쉴 사이없이 흐르고 흐르고 크나큰
역사를 가지고 있다....(이하생략) 1943년 8월 7일 매일신보 논문
* 뒷일은 우리가
학도 출진의 북은 울렸다. 그대들은 여기에 발맞추어 용약(勇躍) 떠나련다! 가라
마음놓고! 뒷일은 총후(銃後)는 우리 부녀가 지킬 것이다. 남아로 태어나서 오늘같이 생의 참뜻을 느꼈음도 없었으리다. 학병제군 앞에는 양양한 전도가 열리었다. 몸으로 국가에 순(殉)하는 거룩한 사명이 부여되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이냐. 제군은 오늘 이때를 영구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가라! 전선으로 그 뒤는 우리가 맡겠다꼭悶?지지않게 황국 여성으로서 사명을 완수. 총후의 여성들은 제군들이 안심할 만큼 만사를 해내일 각오가 굳은 바이니, 바라건대 모쪼록 빛나는 전공을 세워 조선학도의 참다운 일면을 길이 청사에 빛내여라! (조광 1943년12월)
* 남자에 지지않게 황국 여성으로서 사명을 완수
1943년 12월 전시교육임시조치령에 따라, 이화여자전문학교를 폐교하고
'여자특별연성소'라는 농촌지도원 양성기관으로 바뀐 것에 대하여 매일신보에 발표한 글이다.
아세아 십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 바야흐로 최고조에 달한 이때 어찌 여성인들 잠자코 구경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날을 위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벌써부터 되어 있었습니다. 내지 학도들과 함께 전문학교 법문계 반도학도들은 우렁찬 진군을 일으키어 특별지원병으로서 오는 1월 20일에는 영예의 입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반도학도들에게 열려진 군문으로 향한 광명의 길은 응당 우리
이화전문학교 생도들도 함께 걸어가야 될 일이지만 오직 여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참여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이란 반드시 제일선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학교가 앞으로 여자특별연성소 지도원 양성기관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생도들도 황국여성으로서 다시 없는 특전이라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당국으로 부터 장차 지시가 있을 줄로 압니다만, 대략 현재의 계획을 말씀드리면 명년 1월 부터 3월까지는 지금 재학생들을 단기간에 훈련시키어 지도원으로서 전 조선에 파견시킬 터이며 다음으로 4월 부터 1년을 수료기간으로 하여 신입생을 받아들일 계획입니다. 앞으로는 결전하의 국가목적에 단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우수한 지도원을 양성하기에 전력을 할 각오가
있을뿐입니다. (매일신보, 1943.12.25)
* "전시가정" 군국의 여학생 - 연파소설을 청산 취미와 오락에도시국색
여학생! 하면 그들의 세계는 시국과는 관계없이 그저 무사기하고 명랑하게
지나기는 딴세상과 같이 생각이 됩니다. 도대체로 봐서 여학생이 그렇게
명랑하게 지내는 것이 스스로 시국에 들어 맏는 점이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걸음 나아가서 생각하면 지금은 단순히 무사기하고 즐겁게 지낼때만은
아닙니다. 명랑한 동시에서 한편으로는 긴장하고 엄숙한생활을 해가면서
장래의 우리나라가 정??? 고 나갈 주부로서의 자격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반러가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부하는 여학생들의 취미와 경향같은 것도
어느정도까지 시국영향을 길영하야 전과는 훨씬다른 점이 있어야하고 또
스스로 있게될 것입니다. 여기에 이화여전의 교장이신 천성활란 선생을 뵙고
시국중 여학생들의 학창생활과 취미오락 사상경향을 말씀들어서 여기에 기재
합니다.
학생들의 요즘 취미말입니까. 이전같이 취미본위의 생활은 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학교당국에서 항상주의해서 단련시키는 것은 인고단련을 목료로 삼으니까 학생들의 취미와 생각도 이점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취미라면 자기의 전문하는 의외에 길이니까 방과후의 학생들의 동향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인데 자세한 점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스포츠, 독서, 그외의 음악같은 것으로 나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스포츠에 있어서는 앞서서부터 벌써 우리학교에서는 여학교이면서도 남학교와 같이 검도부를 두고 방과후면 배워 왔습니다. 이것도 학교에서강제적으로 시키 .... 독서방면은.... 예전같이 순문학서적만 읽지 않고 참고서류를 많이 읽는다고 합니다.
제일 많이 읽는 서류가 종교, 윤리론서류이고 국체론이 많이 나간다고 합니다. 다
아다시피 일본학이란 새 학과가 생긴후 학생들도 이방면의 연구가 심한 것 같습니다. 소설같은 것은 만이 읽지 않고 시국서류가 많이 나가는데 이점 은 퍽 주목되는
경향입니다. 말하자면 총후여학생들이 시국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이 여기에
엿보이는 것이지요..... 통틀어 그들의 요즈음 경향이라면 취미본위보다 인고단련의
깃발아래서 한가하게 논다는 일없이 적은틈을 타서라도 꾸준희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매일신보,1941.9.30)
돌삐 생각...
우리 현대사의 수치 친일파들...
돌삐 역시 일본음악, 애니메이션 즐기는 상황에서 니나 잘해하면 그대 니똥 굵
다고 묵묵히 응답하겠지만...
물론 그들이 당시에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친일적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때 세워진 BC 정부 (맞지 ?)
를 이끈 사람은 나중에 재판에서도 자신은 옳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프랑스 정
부는 그를 처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