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이제 광고 속에만 있다
춤추는 두 글자가, 옆자리 신문을 훔쳐보는
당신의 가슴에 폭풍을 일으킨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속도에 맞서 자폭하고픈
당신 앞에서 장난감 총을 쏘며 노는 아이들
노란 혁명이, 노란 먼지 날리며
일면 톱으로 당신을 덮친다
창가로 날아드는 날카로운 가을 햇살에 찔려
눈을 감은 10월, 하얀 눈 속의 러시아가 피로 물든
다
붉은 시월이 노란 시월로 둔갑할 때까지
현대자동차에 레닌의 얼굴이 겹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나
노란 시월이, 놀라운 시월이 밀려온다
나를 사다오. 세기말의 자본주의여―
붉은 시월에서 노란 시월까지 긴 잠을 자던, 나를
깨워다오
국내 최저 속도에 안전엔진을 부착한 나를 제발 흔
들어다오
거짓 된 입술들에 침이 마르지 않아
누군가를 고발하고 싶지만, 법정이 없고
뿔뿔이, 저마다, 깨진 돌덩어리들은 침묵한다
1994년, 최영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난다'는 지금
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으로 남아있다. 원체 평범한
시들이 갖고 있는 그 감당할 수 없는 닭살돋음에, 시에 무지
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서른, 잔치는 끝난
다'에는 투쟁 후의 비애가 들어있었고, 대담하고, 당당한 보
폭의 창조가 들어있었다.
4년이 지난 후 발표한 2번째 시집. 그녀는 다소 문인들의
그 퀘퀘한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
긴다. 전형으로부터의 탈피로 찬미와 매도를 동시대 받았던
4년 전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그리워진다.
그렇지만 최영미, 그녀의 시는 나를 기죽이기에 충분했다.
며칠 전 류시화를 비웃으며 은연 중에 갖게된 나의 '싸가지
없음'을 그녀는 진실된 시구로, 사려 깊은 생각으로 완전히
뭉개버렸다.
시를 읽으며 내내 최영미가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난
궁금했었다. 그녀가 내 부인이라면, 그녀와 충분하리만치 오
랫동안 같이 살아가야 한다면 좀 짜증이 날 수도 있겠단 생
각이 들었다. 비단 최영미만이 아니라 시인과 함께 살아가는
건 언젠가 한계가 있을 것만 같다. 그 너무도 깊은 감수성을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으랴. 툭 하면 징징 짜는 그녀를, 그
래도 인내심 좀 있는 나로서도 포기해 버리고 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