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 보건데 난 참 많은 착각 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상대가 날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럴 것만 같은 혹은
그럴거라는 또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내 자신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들어왔던 것 같다. 특히 비와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면
내겐 더 아픔이 남는다.
......
1편이 등장했던 대학교 1학년때에 같은 학번, 같은 과의 여자 아이.
그와 나는 동아리 엠티를 같이 갔다. 역시 그 날도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우리가 간 곳은 강원도에 위치한 오대산 국립공원. 진고개라는 곳에서부터
청학동 소금강(오대산 소금강이라고도 한다)까지 산행을 하였던 게다.
비는 산행 내내 왔다. 저녁에 올라올 때부터 비가 오더니 다음날
산을 모두 내려갈 때까지 쏟아졌다.
......
하산하고 나니 비는 그치고, 우리는 맑게 개인 강릉 하늘을 보며
경포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해변에 위치한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그날 저녁을 술로 지냈다.
......
얼큰하게 취했을 무렵, 나와 그는 자연스레 바깥에 나왔고
난 그녀와 어깨동무를 하고 경포대로 나갔다. 아침해를 보겠다며
새벽 4시부터 갔던게다.
난 어느 정도 정신이 있었는데, 그는 이미 술에 취해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어쟀든 난 그와 바닷가로 나갔고
몸 전체를 휘감은 술기운에 백사장에 누워버렸다.
......
잠이라도 청할까 했지만 여름이라도 아직 쌀쌀한 바닷바람에
얼어죽을 것만 같았다.
술기운에 잠든 그녀를 깨우기 위해 흔들다 난 자연스럽게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
사실 난 자전거만을 머리 속에 남겼던 건 아니었다. 분명 잊었지만
그는 자전거와 함께 내 머리 속에 남아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