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의 탄탄한 발바닥은 어지럽게 엉크러진 나무가지사이를
이리저리 옮겨다니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여우의 꽃신은 처음엔 도토리를 얻기위한 방편일뿐이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먹이를 할애해야만 얻을수있는 필요악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두려움.
원숭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때문에 성큼 그렇게 빠져들고 말았던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매사 그 두려움의 존재를 동반하여야만 하는걸까.
쥐스킨트의 승부. 늙은 묘략꾼의 조심스런 수비보다
젊은 체스꾼의 과감한 무모함이 더욱 매력적이지는 않을까.
하지만.벌써. 우린 이것저것 재봐야하는 묘략꾼의 세계로 빠져들었을까.
아니면.설마 아직도 젊은 체스꾼을 모방하기엔
너무나 철부지같은 아이일뿐인가.
나는 내 신념과 내 의지대로 살아가고싶을뿐이다.
그것이 설령 오도일지라도. 내 자신의 숙고라면. 누구의 질타가 두려울까.
오히려 내존재를 뒤로한 타인의 강요된 정도가 더욱 역겨울뿐이다.
20대의 중반에 나는 오롯이 서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