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Adieu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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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231 Vote: 1 )

하나의 천년이 가고 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새천년. 모
든 것을 새롭게 적어가야 할 새천년.
사실 본성이 원칙주의적이고, 사회정의가 훼손되는 걸 인
정치 못하는, 경직된 성격의 나는 새천년은 인정해도 세기말
은 인정할 수 없다. 그리하여 지금껏 단 한 번도 세기말을
운운해 본 적은 없다.

분명히 세기말은 이제부터다. 아무리 열린 사고를 지향한
다 하더라도 이제 스물 넷, 적당히 나이 먹은 이 시점에서
본성을 무시하며 이성을 따르고 싶진 않다.
사람들은 나이 먹을수록 교활해지고 계산적이 된다고 하던
데 난 이제서야 거추장한 거죽을 벗어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예전 무엇 하나 쉽게 털어내지 못한 채 혼자 꿍 안고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인위는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만 한다는 걸 깨닫고 있다.

난 神과 동일한 위치에 서고 싶다. 한낱 미천한 인간에 불
과한 내가 감히 神을 종종 모독하게 되는 건 이와 같은 맥락
이다. 난 초연하고 싶다. 감정의 흐름에 부자연스러움이 없
는 편안함을 지니고 싶다. 난 즐거움, 슬픔, 쾌락, 고통으로
부터 벗어나 마치 조용한 개울물처럼 만물에 초탈하고 싶다.

1900년대는 내가 태어난 시기로 기나긴 100년을 내 입으로
담기엔 너무나도 벅찬 세월이다. 다만 교육을 통해 많은 것
이 변화하였다는 것을 배웠고, 또 많은 사건과 사람들로 획
기적인 기록들이 남겨졌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에
감탄하지 않는 까닭은 앞으로 새롭게 다가올 100년, 또 1000
년은 이보다 더욱 빠른 진보와 변화로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시간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1999년은 내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1900년대의 마지막 해에 난 도전할 수 있었
음에 만족한다.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없다 하더라도 난 스
스로 대견해 하고 있는 중이다. 나이 스물 둘, 세상의 많은
진보를 청년들이 해왔듯이 나 역시 시대의 조류에 뒤떨어지
지 않고 거친 헤엄을 쳐 나가고 있음에 만족한다. 그리하여
저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와 이곳
이 내가 나아갈 곳이구나,란 의지를 불태우곤 한다.
지금 난 거물을 꿈꾸고 있다. 새천년, 그 이름만큼 내겐
새로운 기회의 시간임을, 깊은 희망의 환희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올해 성훈과 용민이 제대를 했다. 2년 동안 기다려
온 날이었다. 2년 전 뜨거운 추억들을 뇌리 뒤편으로 넘긴
채 잠시 유보해야만 했던 시간의 빗장을 다시 풀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다.
자비로운 神께선 내가 권태로워 하는 모습을 안스러워 하
셨는지 이제서야 최대의 시련을 주셨지만 굳은 결의가 쉽게
깨져버릴 것이란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시간은
해결해 준다. 난 시간의 그 불멸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사랑. 스물 셋의 사랑은 또 하나의 커다란 깨달음
이었다. 사랑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임을 알게 된다. 하나하
나 배워나가면서 사랑하는 법을 익혀가는 건가 보다. 올해
사랑을 많이 갈구했었고, 사랑에 많이 슬퍼했었고, 또 사랑
의 가벼움에 철없이 도전했다 많은 시련을 겪었었다. 그리하
여 이제서야 조금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새천년의 내 사
랑은 보다 나아질 거란 믿음을 가져본다.

연말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혼돈스런 날들이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데에서 왔던 감당할 수 없는 피곤함에 패
해 결국 반년이상 지속해왔던 학원생활을 포기하게 됐고, 하
나의 커다란 기회의 시간이자 억압의 시간이었던 공익 역시
내 생활 속에서 잊혀지게 됐다.
그리고 역시 사랑. 사랑은 역시, 감히 얕볼 대상이 아니
다.

새천년은 의미 깊게 맞이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난 부산에
갈 계획이었다. 부산에 가면, 모든 감정 - 갈등, 아쉬움, 안
타까움의 감정들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
를 붉게 적히며 힘차게 떠오르는 새천년의 태양을 보고 있으
면 모든 걸 잊고 단지 진보에 대한 의지만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지 못했다. 세상, 마음대로 되는 건 그다지 없으
니 특별히 아쉬워하거나 억울해 하지는 않는다.

이제 몇 시간 안 남았다. 저 가슴 벅찬 새로운 천년을 이
제 난 맞이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내 아름답던 시절들,
1900년대에 기록된 내 소중한 일기장을 이제는 추억의 책장
속에 소중히 보관해 두려 한다.

아듀 1999, Adieu 1999.
다시 보지 못할 아름다운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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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