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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ntrah ( Hit: 201 Vote: 1 )


낮부터 피곤해서 잘 기억은 안난다. 영선 누나 주려고 향수 가게
에 들어가서 향수를 고른다. 무얼 사야할지 잘 모르고 일단 들어왔
다. 레몬 향기가 나는데 이게 왠지 모르게 좋았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향수 냄새들을 맡아 나가는데 맘에 딱 드는 거-아마도 레몬
향기-는 없다. 조급해진다. 일일이 다 냄새 맡기도 귀찮아진다. 대
충 맡아 나가는데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다. 한 두 순배 정도 돌
아가며 냄새 맡다 보니 복합적으로 조급한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드는
데 자꾸 잊어버린다.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 아, 이렇게 냄새
를 맡다 보면 코가 피곤해지거나 향수 냄새에 익숙해져서 냄새를 제
대로 못맡는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점원이 뭐할 거냐고 묻길래 친구
한테 선물할 거라고 대답한다. 문닫을 시간(5시)이 되어가서 점원이
급해 하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조급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편안하지
도 않다. 레몬향에 끌렸다고 생각하고 색깔이나마 비슷한 향수를 사
려고 했는데, 점원이 그걸 다 치워버렸다고 말한다-내가 고르기 직전
에 진열대에 그 향수가 있던 자리가 비워져 있고 그걸 알고 난 뒤에
그 향수를 사기로 결정하고 아쉬워했다-. 결국 대충 보라색 향수를
사서 포장해 달라고 한다. pcs처럼 생긴 향수병에 희진이가 5시 05분
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그가 이 가게의 단골이라고 생각한다.
포장을 해주는데 선물용 포장지를 해주지 않고 아무 박스에나 대충
싸준다. 나는 향수나 깨끗한 포장, 선물의 집 같은 것들, 그러니까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 당했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당시 친구
들의 문화와 영영 거리가 멀 줄 알았다. 향수나 포장은 아마 내가
그들 안에 포함되는 문제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때문에 아무 박
스에나 포장해 줬을 때, 나는 실망하고 약간 낙담한 것 같다. 계산
을 하는데 희진이가 옆에 선다-그가 향수 가게 문닫을 시간 너머에
가게에 들리겠다고 pcs처럼 생긴 가게 향수병에 문자를 보냈으므로
나는 그가 여기 단골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희진이에게서 연상하
는 그런 내용과 달리 꿈의 희진이는 살이 많이 찌고 무언가 불쾌한
감정을 유발한다. 이 불쾌감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남에게 투사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왔던, 그런 것이다. 그의
남자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왠지 낙담된 분위기에서 그들과 만났으
므로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경북대에서의 느낌과 비슷했다.


본문 내용은 9,191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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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