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 난 까닭 없이 아주 슬픈 멜로영화를 보
고 싶었었다. 아주 슬픈 홍콩영화를 한 편 보고 난 후 펑펑
울고 싶었던 것인데 특별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모든 일에 적당한 이유가 항상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그 무렵 극장가에는 여고괴담 2, 같
은 공포물, 혹은 Toy Story 2, 같은 유치한 애니메이션, 아
님 007, 같은 식상한 액션물이 전부였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
이었었다.
그리하여 고른 것이 바로 이 天旋地戀,이라는 (자칭) 화제
의 극장 개봉 비디오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예
상과 달리 전혀 슬픈 쪽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주머니의
심금을 울리는 최류성 멜로영화는 몇 년 전 한국의 영화계에
만 존재했나 보다.
영화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홍콩 젊은이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학업 때문에 일본으로 떠난 애인과 일 때문에
일본으로 떠난 불알친구의 사랑, 다시 말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같은 이야기였다.
홍콩에 남겨진 그는 아주 유능하고 성실한 회사원이고, 일
본으로 떠난 애인 역시 아주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그 불알친
구는 만화가 지망생으로 별 가능성도 없고, 또 특별히 삶에
대한 의식이 투철한 사람도 아닌 일반적 견해로는 다소 쓰레
기 같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건실한 그 대신 껄렁한 그를 택했다. 그
리하여 이름도 화려한 天旋地戀인가 보다. --;
일본 거주 홍콩인들의 세계가 너무 좁았나 보다. 다른 세
계로 뻗어나갔더라면 비극은 안 일어났을 것을.
그렇지만 알지 않던가. 사랑은 의지가 아니다. 내가 그 여
자를 사랑해야지, 결심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
게, 아무런 의지도 없이 마음이 흐르는 거다. 그리하여 사랑
의 마음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제일인 것 같다. 마음이 행
한 선택이라면 친구의 애인이건 다부다처제건 무엇이든 흐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갈수록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에 대한 신용은 떨
어져 간다. 동물과 같은 자연스러운 마음, 곧 기본적인 본
능, 욕구대로 살아가는 게 神이 정해놓은 선은 아닌가 보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런 모든 인위를 벗어나야지만 선을 선으
로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는
이미 선을 벗어난 세상의 도덕 속에 살고 있어서 진정한 선
을 악으로 오해하고 왜곡시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홀로 남겨진 그도 옥보단,의 주연배우 서기를 만나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다행이다. 그런데 서기, 옥보단에
선 정말 가슴 큰 글래머였는데 이상하게 이 영화에서는 작아
져서 다소 의아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