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6 김은태 (bennet )
세사람의 내기 (1) .... 망신 12/22 15:32 213 line
세사람의 내기 (1) - 망신
아직은 술자리가 거나하게 이루어지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세사람
은 술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
남들은 한참 저녁 식사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시간에 이 세사람
이 술집에서 자리를 함께 하게 된 데는 저마다 한가지씩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고민은 귀가 시간을 의도적으로 늦게 만들
어야 하는 일이었으며, 또한 저마다의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결같이 똑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김형! 그래서 일찍 들어가면 안된다는 거지?”
“그렇다니까. 박형도 그러면서 왜 남 얘기를 물어?”
“하긴 최형도 그렇다니....이거 원 참....”
잠자고 앉아서 두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한사람이 제
안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정도가 가장 센가를 내기해볼까?”
“그거 좋지......”
저마다 자신있다는 말투로 세사람은 자기 사정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
세사람이 집에 일찍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모두들 술 때문에 살고 있는 집 동네에서, 한 번씩 커다란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기에 동네 사람들 보기가 창피한 나머지 이른 시간
에 집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같은 이유로 고민하고 있는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결국 우둔하게도 누가 더 큰 망신을 당했는가를 따져보게 된 것이
다.
“제일 심하게 망신 당했던 사람이 술값을 내고 남은 두사람이 2
차를 화끈하게 한잔 사도록 하지?”
누군가의 제안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너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하나씩 꺼내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첫번째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얼마전에 말이야.......술을 한잔 했는데 그날 따라
어질어질하더라구. 그래서 겨우겨우 집에 찾아 갔는데 우리집이
아닌 거야. 그래서 이집저집 다니면서 벨을 누르고 소리를 쳐댔지
만, 모두가 우리집이 아니더라구. 동네는 맞는 것 같은데 도대체
집을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112에 전화했지. 동네는 맞는데
집을 못찾겠다구. 잠시후에 경찰차가 오고....난리가 났었어.
몰려든 사람들 틈에 마누라 얼굴이 보이더라구....그래서 집을
찾았다 싶어 그자리에서 팍 퍼져버렸지.
아침에 깨어보니 마누라가 동네 사람 보기 민망해서 못살겠다면서
바가지를잔뜩 긁고 있지 않겠어? 그 뒤로 나는 밤 늦은 시간 아니
면 동네에 걸어다닐 수도 없게 된거지....”
“허허~ 그거 심각한 일이군....”
듣고 있던 두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네.....”
술잔에 반쯤 남은 소주를 벌컥 들이킨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이야
기를 시작했다.
“나도 비슷한 경우지. 근데 상황이 좀 다르구만. 알다시피 우리
집은 아파트잖아. 택시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내가 깨질 않으니 택
시 기사가 아파트 관리실에 집어 던져 버리고 그냥 가버린거야.
12시가 넘어서 술취한 사람이 아파트 관리실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있으니 아파트 관리인들도 대책이 없었던 모양이야. 몇호에 사느
냐고 물어보고 때려도 보고 꼬집어도 봤다는데 나는 도통 기억이
없어서.......”
“그래서?”
소주잔을 오가며 듣고 있던 두 사람이 호기심에 가득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
다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관리실에서는 그 커다란 아파트 단지 전체에
방송을 했다는 거야. 지금 술취한 사람이 관리실에 누워 있으니
남편 안들어 온 집은 와서 확인들 하라고. 참 근데 말이지.....
그 시간에 왜 이리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남자들이 많은 거야?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엄청나게 많은 아줌마들이 왔다 갔다더구
만. 심지어 구경하러 온 사람도 있었고, 어떤 남자는 남자끼리의
의리도 없이 잠자는 마누라 깨워서 ‘저런 사람도 있으니 나는 양
호하다’를 외치던 사람도 있었다는군.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우
리 마누라가 그들중에 좀 일찍 와서 데려갔으면 일은 간단했는데,
방송을 늦게야 들었다나? 하필이면 거의 마지막에 오는 바람에 아
파트 주민들 한테 얼굴만 잔뜩 팔린 셈이 되었지. 그래서 날이 훤
할 때에는 집 뿐아니라 아파트 일대에도 갈 수가 없게 된 거지”
“그것 참.....”
듣고 있던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마친 사람은 술잔에 반쯤 남은 소주를 스스로 마저 채운
뒤, 홀짝 마시더니 잔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
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다시 아까의 그 자세로 자신
의 잔을 채웠다.
“참, 마지막으로 자네는 어때?”
방금 긴 이야기를 끝낸 사람은 원래의 버릇대로 술잔의 술을 반쯤
마시더니 아직 얘기를 꺼내지 않은 다른 한사람에게 물었다.
“음.....나는.....”
마지막 이야기 차례가 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네들이 각각 말한 두 경우가 나한테도 똑같이 있었다네...”
그러자 분위기가 들썩 거리기 시작했다.
표절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창의력이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내기라는 것을 잊었느냐는 질책도 나왔다.
하지만 대꾸 없이 그들을 바라보던 마지막 사람은 이들의 항의에
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