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전쟁이지만 그들만의 싸움만은 아는것 같다.
바로 우리 할머니들의 얘기이다.
홈페이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배너를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배너는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 혹은
제 홈페이지 ( http://go.to/imjacky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사건은 1930년대에서부터 1945년 일본이 패전하기까지 당시
일본제국의 관료들과 군인, 또는 이들의 촉탁을 받은 민간인들에 의하여 납치,
기망, 강제에 의하여 이른바 정신대나 취업사기등으로 동원되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피해여성들을 일본군인들의 성노예로 동원한 사건입니다.
당시 일본은 전쟁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여성을 비롯한
점령지의 여성들을 일본군의 위안부로 동원하여 성적노예로서의 삶은 강요하였
음은 물론이고 갖은 구타와 살인, 그리고 패전후 위안부로 동원한 여성들을
현지에 유기하거나 살해한 혐의들을 받고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하루에 평균 20-30명에 이른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주말은 그 수를 훨씬 넘었다. 현재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그 당시 지옥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생존해 남았으며 그 당시의 상처로 말미암아 현재까지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피해자들은
대부분은 자식마저 출산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정상적인 가족제도롤 편입될
수 없어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조차 가지기가 어려운
제 2의 심각한 피해들을 만들었다.
이는 바로 직접적인 생존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이며 설사 출산하는데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어머니의 과거때문에 육체적, 사회적 곤란을
겪어 고소인들의 과거는 이들 2세대와 미래의 세대에 까지 고통의 짐을 지우
고 있는 상태이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사건이 발생할 당시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고통들을 야기하고 있기에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일본은 공식적인 사죄는커녕 배상조차 하고 있지 않고
사실에 대한 진상은 은폐되고 축소되어 있다. 이 사건은 인류 역사상 다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는 참으로 잔혹한 범죄행위라고 단정한다.
피해자들은 단순히 일회적인 강간에 의하여 처녀성을 잃어버린 것인 아니라
그 긴 세월의 굴욕과 강간과 상처에 의하여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잃어버
렸던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 인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피해자들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지금껏 목숨만 부지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일본대사관앞에서 9년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당사국인 일본정부는 외면하고 있으며,
한국정부는 미온적인 해결태도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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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군자할머니 1926년 강원도 평창 출생, 중국 훈춘 고까시로 끌려갔
다왔음. 현재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에서 살고 있다.
성병 걸려본 적이 있어, 매독. 치료받았지. 그때 군인은 안 받았어.
매일매일 병원 가서 치료받았지. 육백육 주사를 맞았어. 한 삼일은 맞았을
거야. 냄새 나지. 그게(삿쿠) 어떤 거는 터지고. 터지기 땜에 안 하는 사람
도 있어. 군인들이 가지고 오나 봐. 임신하면 주인이 유산시켜. 나는 생리가
열여섯에 시작해서 마흔 여덟에 끊어졌지(침묵). 유산한 적 있어. 군인 중에
친한 사람은 있었지. 육군 소쬬 금줄에 노란 별 하나 빨간 데 가서 금줄이
있고 별이 있어. 우리한테 군인들이 죠센징, 센징, 한도징(반도인)이라고
했지. 일본사람 싫어. 나는 일본말 절대 안 해. 그때 일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나. 지겹지. 노상 슬프지. 자꾸 아프니까, 무릎이 아주 아파요. 관절수술을
몇 번 했어. 걷기도 불편하지. 연립주택에 군청 사람들이 자꾸 들여다보곤
하지만 한 집에 사는 것만 못하잖아. 그래서 인제 와서 여기 오기로 작정을
했지. 여럿이 살면 저거하니까 싶어 온 거야.
작년에 강릉병원에 입원해 있으니까, 정선에서 온 위안부라고 테레비에
나오고, 케이비에스고 어디고 안 나온 데가 없어요. 그래서 동생도 알았어.
지금까지 말 안 했거든. 억울해요. 남 하는결혼 한 번 안 하고. 어떻게 보면
자유롭다고도 할 수 잇고 박복하다고도 하고. 평생 살아나온 게 이렇게
기구해. 남 보기엔 안 그럴 것 같다는데.......테레비에서 인터뷰하고
그러는데 짜증내고 그랬어. 망신이지.
♧ 김옥주 할머니 1923년 대구시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해남도로
끌려갔으며, 2000년 1월에 우리 곁을 떠나 현재 하늘나라에 계신다.
요즘 잘 울어. 그냥 가만히 있시먼 눈물이 절로 나와.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
무신 영화 한 편이지 싶어. 이렇게 살아온 내 자신이 한 없이 원망스럽고
(울음). 남에게 쏙고 쏙은 내가 나쁜 게지. 남 원망 안 해. 해봐야 소양
(소용)없고. 그래 열두 살 되는 3월에 일본사람 집에 들어가 오년 살았어.
우리집은 땟거리도 없는 형편이니까. 내가 일한 집 주인 성이 마쓰모돈가
마쓰야만가 하고 이름은 시게미쓰야. 열일곱살돼논게, 얼굴이 부여니까
나이가 있으니까 괜찮잖아. 그러니까 마쓰모토가 인천으로 일하러 가겠느냐고
묻는 거야. 어데 가는지 모르고 인천 가는 줄만 알았지.
돈을 많이 받는다니, 마쓰모도가 일본 남자 둘에게 날 넘겼어. 한 사람에게
히라키 상, 히라키 상 그러더라고. 나말고 여자가 두 사람이 더 있었어.
기차 안에서 만났어. 다시 배를 타더라고. 식모로 8원 받는다고 인천으로
간다고 해서 왔는데, 인천에서 다른 여자들하고 같이 다시 배를 타는 거야.
이상해서 내가 "어디 가냐" 물어봤지. 그 사람이 " 그리 되야 있다. 거기
가 보면 안다"고 해. 그래 나도 거기 가면 되나 보다 했지. 청도로 갔어.
일본말로 진또라고 해. 진또에서 이 사람들이 우리를 일본 남자에게 넘기더
라고. 또 배를 탔어. ....
♧ 김은례 할머니 1926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중국 남경으로
끌려갔다 왔으며,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다.
...술시중 들면서 그렇게 그곳에 있다가 서태안이 고향인 남자를 만났어요.
농사 짓고 배 부리는 어부인데 부자라고 하데. 그이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술집 주인한테 돈을 주고 날 데리고 갔어요. 6개월을 술집에 있다가 그 사람
을 따라 나선 거야. 나보다 열 살 많은 사람이야. 그런데 가서 보니 큰마누라
가 있는 거야. 말하자면 첩살이 신세지 뭐. 큰마누라가 어떻게나 사나운지
고생이 말도 못 했어요. 그렇게 지내는데 동지 섣달에 그 남자가 배 타고
나갔다가 바람이 불어서 엎어져 죽었어요. 그m서 그집을 도망쳐 나왔지.
한 1년 살았어요. 그 집에서. 그러고 살다가 서른세 살에 농사 짓고 옹기
장사하는 시골 홀아비를 만났어요. 딸 하나 낳아서 사는데 6·25가 터진 거야.
그때 그이가 죽었어요. 인민군이 데려간다고 땅을 파서 조카를 숨겼다가
발각이 돼서 맞아 죽었어요. 딱 2년 살고 죽었어요. 지지리도 복도 없어요.
나는....... 남편이 죽고 나서 딸을 데리고 나와서 남의 집 농사일도 보고
장사도 하고 고생고생하며 딸 하나를 키m어요. 그런데 딸 하나 있는 거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시켰어. 그래서 그게 평생의 한이야.
♧ 심달연 할머니 1927년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났다. 대만, 만주,
사할린으로 끌려갔으며, 지금은 대구에서 살고 있다.
" 아이구 언니야 난 우야꼬, 난 우야꼬" 이카이 " 내가 델러 오꾸마" 이카는
그거는 내가 평생을 기억을 하고 있어예. "시키는 대로 해래이. 시키는 대로
하믄 된다. 우지 마라, 때린다. 그래가 차에 태워져 가버리는 바람에 헤어진
뒤로 여지꺼정 나는 우리 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도 몰라예. 같이
있던 사람들이 내보고 그카데. 너거 언니는 하마(벌써) 죽었다. 미국놈들이
원자탄인가 뭔가 던져가 땅이 다 뒤집어지고 우리도 죽을동 모른다 아나,
너거 언니는 하마 벌써 죽었다. 그카디만은 그 말이 맞는 모양이라. 일절
연락도 한 번 없고 이러쿰 사람 찾는다 캐도 찾을 수가 없어. 우리 언니는
그때만 해도 한문을 쪼매 배와가 글을 안다카이. 지는 어데 가도 날 찾아올
수 있지만 나는 찾아갈 수도 없어예. 꼬옥 내 니 찾으러 오꾸마카고 갔던
그기, 그 길로 영영 못 봤잖아예. 아직꺼정 소식을 모르잖아예 내가. 그래
가지고 내가 저게 나눔의 집에, 중국사람들도 오고 어데 사람들도 온다 캐가
거도 한번 안 갔던교. 해나(행여나) 우리 언니 모습이라도 닮은 사람이라도
있는가 싶어가, 거도 내가 안 갈 것도 한 번 갔다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