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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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사탕 ( Hit: 259 Vote: 20 )


어둠은 참을수 없는 침묵을 강요한다. 그 침묵속에서 저항할수 있는 건 없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탄생시킨 부드러운 태양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나약한 피조물들은 언제부턴가 아침의 싱그러운 명령에 부산을 떨며 정해진
자신의 일을 찾아 후회없는 일상으로 돌진한다. 그것이 정해진 이치이며
이를 거부하는 모든 것들은 '반역자'의 대열에 끼게 될 죄의식으로 두려워한다.
존재의 미비함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어둠은 그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 어둠에 거부할 수 없는 투명함이있다.
그또한 또하나의 억압임을 애써 부정하면서. 기꺼이 순응한다.
그것이 어둠의 힘이다. 이런 어둠이 세상을 지배해버리는 늦은 새벽에는
시계소리만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다.다가올 아침으로 묻혀버릴
자신의운명을 보상이나 받으려는 듯이.

은희경의 두 번째 장편 '마직막 춤은 나와함께'를 막 읽은후다.
시간의 흐름을 부정하진 않는다. 2000년은 나에게 꽤나 정신없이 흐른
시간이었다.대학 5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였고, 친한 친구의 임용합격을
접한 후 입학할때의 포부와 어떤 연관이 맺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임용준비를
결심한 후였기에 나름대로의 노력이 필요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하고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들과의 타협의 연속이다. 제각각 다른 모습의
사람들처럼 다른 것은. 어떤식으로든 합리적인 이유를 엮어내는 것 뿐이다.
어쨌든 꽤나 치열했던 시간이고 촉박한 시기였다. '책을 읽고있다'라는
즐거움을 그리워했던 기억에도..감히 전공서적이 아닌 책들에게까지 관심을
보이진 못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소설의 화자처럼 불운한(사람들이 정해놓은 시각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지도 않았고 그처럼 이미 다 커버린 12살짜리 거인의 어깨에서 세상을
관조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이세상에 너무 빠져 버렸고.
그럴바엔 이세상을 관조하기보다는 그속에 어우러져 융화되길 바라고,
더한 바램이 있다면 이끌어나가고 싶은 알량한 자존심도 갖추었다.
할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힘을 잃고 침묵하는 이 어둠속에서도
나는 내 자아를 조금 더 붙잡아 두고 싶다.
그리하여 태양의 찬란한 빛앞에 자신이 하고싶은 일로 포장된 정해진 길을 따라가야하
는 아침을 외면하고싶은지도 모르겠다. 고3수험의 터널을
막 빠져나와 대학생의 화려한 딱지를 얻은 20살처럼.
야행성으로 변해버린 늦은 기상의 면죄부라 해도 할말은 없다.
어쩌면 '본능'을 가진 생명체들의 특권은 오히려 야행성이 아닐까.
왕왕 어둠속의 촛불아래 사람들의 센치함이 한결 더해지는 걸
보면 터무니 없는 소리는 아닌 듯 하다.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면을 품고있다는 것은 공유한다고 인정한다.
그것이 작은 행복을 위한 커다란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내 존재의
무방비를 알고 있기에 내 스스로 쌓을수 있는 최선의 방어라는것도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그와분명 다르다.
그처럼 철저히 냉소해질 필요가 있을만큼의 상처는 없다.
나는 '윤선'처럼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는 그 순간 상상의 동화속에 푹빠져
있고 싶다. 사랑하고 있는 동안은 (적어도) 특별할것없는 점심밥상의 숟가락
조차도 나를 위해 존재하고 그로인해 나는 특별해 진다.
그것이 사랑의 신비이며 끝없이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해 줄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공감하는 것은 '진희(화자)'의 이별이다. 운명을 믿고 있되 또 부정한다
. 그와의 사랑이 동화속에 나오는 행복한 결말의 끝을 이어줄수없다는
것은 운명이고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운명을 부정함으로 나는
또다른 사랑을 받아들일수 있다. 애초부터 정해진 운명적 사랑이라면 부정하는 것이다
. 이것이 나약한 인간을 끝이없는 나락의 우물로부터
건져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랑에 나를 걸지 않는다.
사랑은 분명히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만 내 삶의 한부분으로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지 내 삶이 사랑의 부분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론 사랑의 격정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나의 딜레마이다. 누구나 '어쩔수 없어' 라고 말할 권리쯤은 있다.
그런 것이다. 슬픔을 동반한 아찔한 밤의 무드속에서 하염없이
상념을 즐기다가 나는 벼랑끝 외딴섬에 갇힌 공주가 되기도 하고
총칼을 차고 용감하게 적진을 향하는 잔다르크가 되기도 한다.
때론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왕자를 기다리는가 하면
어느순간 이세상의 모든 여성을 대변하여 약자의 비애를 견딜 수 없어
부조리에 대응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린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각자 나름의 꿈속에 곯아떨어져 방해 할 수 없는 밤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리곤. 어김없이 조간신문이 배달되고. 다시 나는 현실로 돌아와
언제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변한건 없다.
나는 등교하는 대신 직장에 나갈 것이고.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시계를 보게 될것이고, 커피한잔을 들이키며 동료들과 유쾌하지만
진부한 농담을 늘어놓을 것이다. 시간이 남는다면 몸매관리를 위해
약간의 체조도 잊지않을 것이다.
신은 다행스럽게도 언제나 '병행' 이란 단어를 허락한다.
인터넷 전용선을 깐 이후로 나는 어느 작업을 하건 pc를 켤 때
웹페이지를 열어낸다. 내 '병행'을 확인이라도 하는 것인가.
다소 지쳐버린 오후엔 내 나름의 삶의 계획대로 내 몸과 내 정신을
집중시킬 것이다. 그것이 그시간에 내게 주어진 내 삶을 가치롭게 만들
목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방법일수도 있지 않은가.

왜 사람들은 사랑을 노래하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으로 사는가....
상투적인 질문들이다. 그러나 다시생각해 보면 상투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포함한다. 사람들은 상투적인 표현이 될만큼 그 질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나도 그렇다.끊임없이 묻고 끊임없이 대답하려 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인 셈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집 안 한 구석을 조용히 메우다가 어느틈엔가 내방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나이를 알 수 없는 낡은 벽시계 소리는 이 순간에도
기운차게 울고 있다. 감히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무생물' 임을
부인할수없는데도 다가올 아침의 침묵을 의식하는 양 처절하게 울고 있다.
내일 나는 어김없이 영어회화를 하기 위해 모닝 클래스에 참석할 것이다.
변한 것은 없다. 그러나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 살아있다.




본문 내용은 8,791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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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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