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문화일기 136 Virus (199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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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사사 게시판』 32161번
 제  목:(아처) 문화일기 136 VIRUS                                   
 올린이:achor   (권아처  )    99/04/14 02:17    읽음: 26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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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RUS, 1999, 영화

        언제나처럼 여전히, 아침에 통신을 하다 시간에 쫓겨 출근
      을 한다. 아, 또 권태로운 하루가 시작되는군. --;

        일을 하라고  마련해 놓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도 할 일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난 널널하게 한 방울씩 비가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다  어느새 달력을 향해 있는  내 눈길을 발견한
      다. 4월 13일 화요일... 벌써 4월도 반이나 흘렀군...

        아 참! 그  때 문득 민석이 준  영화 시사회표가 떠올랐던 
      게다. 바로 오늘이군! 이거 원.

        표는 두 장인데 마땅히  함께 갈 사람이 떠오르질 않았다. 
      옆 사무실 그녀에겐 함께 보자고 말할 용기도 없고. 난 소심
      한 사람이다. !_!

        근심 어린 눈길로 표를 보고 있자니 예전 호겸과 함께 [삽
      질]이란 이름을 달고 행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상황은 아주 
      흡사했다. 두 장의 시사회표, 그리고 나.

        적어도 껄떡거림계에서  시사회표 두 장의  가치는 일반표 
      두 장의 가치보다 크다. 왜냐하면  "제게 영화표가 두 장 있
      는데 같이 보러 가실래요?"는  인위적인 맛이 나지만 우연히 
      얻은 시사회표는 자연스럽다.

        결국 난 그 시절, 그  수법을 다시 써보기로 결심했고, 며
      칠 전 Chatting을 통해 알아놓은 그 아이의 연락처를 기억해 
      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오직 그 아이의 PCS 번호밖
      에 없었다.  그녀의 성격이 어떤지, 생김새는  어떤지, 그런 
      것들은 전혀 알아두지 않았기에 조금 모험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카드였기에 난 그
      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 난 이름도 모르는 그녀에게 첫인사를 건넨다. 우
      리는 서로 아는 게 거의 없다. 내가 그녀의 PCS 번호를 알고 
      있다면 그녀는 내 프로필 사진만 보았을 뿐이었다.

        내 제안을 그녀는 조금은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순순히 받
      아드린다. "그래. 이따 거기서 만나."

        덕수궁 앞에서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뜨아, 이런 
      일이! 그녀는  완전 퀸카였던 게다. 허허.  키는 170cm에 쫙 
      빠진 몸매, 게다가 스커트까지! 허허. ^^*

        정동극장에 들어섰을 때는 상영시간을  조금 넘은 19시 15
      분 경. 화면에서는 거대한 태풍이 있었다.








        에일리언과 꽤나 비슷한 영화였는데 이런 류의 영화중에서
      는 가장 흥미있게 본 듯  하다. 다른 건 몰라도 영화를 보면
      서 이렇게 깜짝깜짝 놀랐던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그  태풍을 표현한 모습이었는데 상위
      구도로 잡은  태풍의 눈 속에서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작게 표현된 배 한 척이  거대한 자연의 힘, 태풍 속에서 아
      주 잔잔히 흐르는 모습,  마치 Dream Theater의 음악을 듣는 
      느낌이 들었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름대로의 특색이 희박한 편이
      었고, 과학, 기계 문명이 가져올 인간애의 상실 따위의 주제
      가 너무 식상했고, 또 너무 교육적이었다는 것 정도.

        영화가 끝나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늦었으면 집에 가고, 
      아니면 차나 가볍게 술 마시고  가자." 난 뭐 어떻해도 괜찮
      은 편이었지만  나와 함께 있는 게  불변한 여자와는 아무리 
      아리따운 여자라 하여도 같이  있고 싶지 않다. 그리고 다시
      는 안 볼 여자라 하여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

        "나 시간은 정말 많아.", 그녀의 대답으로 편안해 졌다.

        종로까지 걸었다. 택시  타고 가겠냐고 물어보았더니 뭐든 
      상관없단다. 무슨 술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뭐든 상관없단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였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걷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빌딩숲,  화려한 자동차 라이트 속에서 걷는 
      건 매력적이란 생각을 하였다.

        레몬소주를 시키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 썰렁하고 
      보잘것없는 얘기도 귀 기울여  들어준다. 수줍게 웃는다. 그
      렇게 벌써 23시. 지하철 끊길 시각.

        그런데 그녀는 도무지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 그
      만 일어나자, 이러다가 차 끊기겠다." 내가 먼저 일어선다.

        지하로 뻗은  역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
      다. "우리 노래방 들렸다  가자.", "그럼 차 끊길텐데?", 그
      녀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버스 타고  가면 돼.", 라고 
      말한다.

        노래방, 여러모로  역시 편안하게 해준다.  노래가 끊나니 
      24시 20분.

        다시 버스정거장으로 향한다.

        "너 당구 잘 쳐?",  이번엔 당구다. 그녀의 마음이 느껴진
      다. 그녀는 나와 여관을 가고 싶어하고 있다.

        냐하, 당삼 콜이지! ^^;
        ...였다면 내가 이런 글을 썼겠느뇨. 허허. --;

        아, 젠장, 비극은 이제부터다. !_!
        사실 요 며칠 서울 시내  각 지를 돌아다니며 소개팅을 몇 
      차례 했었는데 학교를 자퇴한 고삐리나 영계들을 만나느라 1
      차, 2차, 3차 연이어 쭉  내가 다 써버리느라 가산을 탕진했
      던 게다. !_!

        여관비만 있었다면, 허허, 콜이었겠지만 눈물을 머금고 그
      녀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버스가 왔다. "다음 거  탈께.", 다시 버스가 왔다. "다음 
      거 탈께.", 그녀는 계속 미룬다.

        그녀는 내 아쉬운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새침한 표정
      을 지으며 세 번째 버스에 오른다.

        "오늘 정말 편안했어. 다음에 꼭 연락해. 꼭.", 그녀의 마
      지막 인사.
        ps. 내 一場春夢이라  말하여도 괜찮겠지만 그녀를 값싸게  
            보는 건 절대 사양하겠음.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그건  
            전적으로 상황을 잘 표현해 내지 못한 내 열악한 문장  
            력에 있는 것이지 그녀의 탓은 아니란 사실을 밝혀둠.  
            꺼억.







                                                            98-9220340 건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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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