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끄적끄적 94 0009 다이어리 (2000-10-13)

작성자  
   achor ( Vote: 19 )
분류      끄적끄적

『칼사사 게시판』 37278번
 제  목:(아처) 끄적끄적 94 0009 다이어리                            
 올린이:achor   (권아처  )    00/10/13 00:49    읽음:  0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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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톤의 기상캐스터는 어제보다 몇 도나 떨어졌다며  따
      뜻하게 입고 나서라고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정말이다. 
      오늘은 꽤 날씨가 쌀쌀하였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렇게 커피를 좋아
      하시던 어머니께서 요즘은 좀 바쁘신가 보다. 항상 여느  그
      릇들보다도 위에 엎어져 있던 커피잔이 저만치 뒤에  숨겨져 
      있다.
        
        랜지에 물을 데워 인스턴트 커피를 하나 넣곤 자리에 앉는
      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담배와 커피를 함께 할 
      때 그 맛이 배가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 깊숙이 담배 한 
      모금 빨며 방안을 둘러본다.
        
        나에게 있어서 집은 이제 추억의 장이 되어버렸다. 집이라
      는 게 생활의 장으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건만 나는 
      종종 집에서 옛 추억의 흔적을 찾아 깊은 그리움에 빠져들곤 
      한다.
        
        오늘도 집으로 향하며 마감이 다가온 기사를 꼭  끝내야겠
      다고 결심했었다. 며칠째  사무실에서 니기적거리다가  결국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서는 
      주위에 있는 이런저런 사물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어서  집
      에 온지 반나절이나 되었건만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다이어리를 잘 쓰지  않지만 요 며칠 약속이  있어 
      기록해 둘 요량으로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렇게 자주 잃어버리던 다이어리를 안 잃어버리고 간직한지 
      벌써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긴 요즘은 술도 잘 안  마시
      니까. 친구들이 다들 바빠지고, 또 나 역시 할 일  없으면서
      도 괜히 분주하게 살아가다  보니 막상 좋아하는 술을  마실 
      기회가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예전에는 매일매일 간단한 일기를 다이어리에 기록해 두곤 
      했었다. 몇 시에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고, 또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몇 자 안 되는 짤막한 기록이었지만 그것들을  보
      고 있으면 마치 그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하게 그  때의 
      기억이 나곤 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 잃어버리고 고작해
      야 1년 전 기록들만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너는 즐겁게 산다는 말을 해준  적
      이 있었다. 왜 그러냐는 내 질문에 그 친구는 하나하나 기념
      일을 정해서 나름대로  가꿔나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었다. 
      하긴 내가 좀 그런 경향이 있었던 것도 같다.  독립기념일이
      라는 둥, 퇴원 1주년, 석방 1주년 등 별 것 아닌 날에도  나
      름대로 이름을 붙여 친구들과 술을 마시곤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모른 채 지나치고 마는 날들이 많다는 
      걸 새삼 다이어리를 보면서 깨닫는다. 평생을 가도 결코  잊
      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날의 기억들도 어느새 아무 인식도 하
      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치게  되고, 한때는 아주 중요했던  그 
      날의 날짜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다이어리가 너무 무거워 빼놓은 더미 속에서 이제는  찍지 
      않는 옛 스티커 사진들을 발견한다. 뭐가 그리 좋은지  언젠
      가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
      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스티커 사진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인기가 굉장했다. 도심
      의 어느 거리라도 스티커 사진기 몇 개 없는 곳이  없었으며 
      누구라도 다이어리나 지갑에는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으
      로 도배가 되어있을 정도였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친
      구들의 스티커 사진으로 도배한 다이어리를 갖고 있었다. 지
      금은 잃어버렸지만. 그 사진 속에는 입대 이전의 내 삶에 자
      부심이 많았던 모습이 역력했다. 비록 생활은  구차하였지만 
      당당하게 삶을 지켜가고 있었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
      다.
        
        어느새 3년이 지나 이제는 다시 사회로 돌아갈 걸  생각하
      니 오묘한 회한이 느껴진다. 자유로워진다. 나는 다시  자유
      로워진다. 나는 자유를 생각한다.
        
        나는 자유로워지면 일본에 갈  생각이다. 일본에 가면  나
      는... 일본에 가면 나는...  그러고 보면 일본에 가도  내가 
      할 일은 별달리 없다. 왜 일본에 가느냐고 지금 내게 묻는다
      면 나는 그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곧 이유를 생각해 낼 계획이다.
        
        무언가 억지 같고 도치된 것 같아도 현실에는 그런 일들이 
      많으니 특별히 잘못된 건 아니다. 은희경까지 말하지 않았던
      가. 사랑 후 섹스가 정당할 지 모르지만 섹스 후 사랑도  특
      별히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약을 먹고 물을 먹든, 물을  먹
      고 약을 먹든 어차피 먹는 건 매한가지. 나는 일본에 갈  것
      을 먼저 계획하고 가서 할 일을 찾을 게다. 어쨌든 오랜만에 
      찾아든 자유를 실감하고 싶은 게다.
        
        이크. 벌써 5시 반이군. 이러다가 오늘도 허탕치겠다.  오
      늘 같은 날은 빨리 일을 끝내고 술 한 잔 하고 싶지만  누구
      와 술을 마셔야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와 술을 마셔야 할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누구와 술을 마셔야 할까. 다가올 자유의 시간 속에서  이렇
      게 할 일이 많은데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자유로웠던 시절에, 그리고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에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빼어놓은 다이어리 더미 속에서 무엇
      을 하고 있을까. 아프다는 친구를 만나봐야겠다.












                                                      http://empire.achor.net
                                                            achor WEbs. achor

 제  목:(아처/] 소모임을 돌아보며...                                
 올린이:achor   (권순우  )    00/09/08 18:49    읽음: 23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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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칼라의 모든 게시판을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양
    할 일 없이 배회하며 하나하나 살펴보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어쩌다 보니 나우누리 자체를 메일만 확인하는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예전처럼 여기저기 배회해 보았다.
    어느새 잊고 지내던 이런저런 모임들을 찾아 내 자취를 찾아보기도 하고,
    칼라의 여러 모임들을 돌아다니며
    예전에는 같이 술도 마시고,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슬쩍 엿보기도 하며 시간을 축냈다.

    문득 생각나 프로필을 쳐보면 아예 떠난 친구들도 많았지만
    군대에서 제대하여, 혹은 나처럼 옛 생각에 돌아온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혼자 킥킥 웃기도 하고, 회환에 잠기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나우누리는 추억의 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나우누리 쪽지를 이용하기 보다는
    ICQ 메신저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우누리 게시판을 보기 보다는
    친구들 홈페이지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른바 영토확장을 꿈꾸는, 미국의 유일한 네트워크 경쟁국,
    위대한 코리아의 신제국주의.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정모에 나가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
    예전에 이 친구는 어떤 일을 하겠지, 상상했던 일들이
    2000년 현재, 어떻게 진행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고도 싶고,
    아주 예뻤던 여자아이들을 만나
    눈가의 잔주름을 보며 세월의 소멸을 직접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알럽스쿨,도 가지 않는데...
    나는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놓고 싶은 사람이라서
    아, 그저 지금처럼 바램으로만 기억할 것 같다.

    모두들 잘 살길, 허무하게 빌어본다. --;

                                                            achor WEbs. achor 

 제  목:(아처/] Re: RE: 소모임을 돌아보며...                        
 올린이:achor   (권순우  )    00/09/17 18:54    읽음: 16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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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 우리는 역사가 될 거야.
    허허허허. --;

    그렇지만 잊지 말자.
    Velvet Goldmine.
    커트 와일드는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시간이 흘러보니 세상이 우리를 바꾸었다,
    라고...

    대개의 젊은이들은 꿈을 꾸기 마련이잖아.
                                                            achor WEbs. achor 
 제  목:(아처/] 문득...                                             
 올린이:achor   (권순우  )    00/09/22 18:39    읽음: 18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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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어이 처서를 보냈다.
    열광했던 여름이 그렇게 갔다.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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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