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문화일기 10 레테의 戀歌 (1997-09-05)

작성자  
   achor ( Hit: 1911 Vote: 8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문화일기


『칼사사 게시판』 24085번
 제  목:(아처) 문화일기 10 레테의 戀歌                              
 올린이:achor   (권아처  )    97/09/05 23:35    읽음: 19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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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의 戀歌, 1983-초판 1994-개정1판, 이문열, 둥지

사실 이 책은 요사이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었기에
조금 쉴 요량으로, 마치 영화에 지친 내가 금병매를 고른 것처럼,
택한 이문열의 연애서였다.
(물론 다 읽고 난 지금에서는 결코 3류 연애물이 아니었음을
 이성으로 느끼고 있지만)

그렇지만 어이된 영문인지
허투른 속독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그 어느 책보다도
빨리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 책을
난 최근 읽은 그 어느 책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물론 알바나 achor Co. 사업으로 시간이 줄었던 외적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은
그간의 책과는 달리 내 사고와 너무도 다른 작가의 가치관으로 쓰여졌기에
스스로 많은 고민과 심사를 거치며 읽었던 점일 게다.

이 책은 적어도 내겐 결혼과 성(性)에 관한
포괄적 개론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나 역시 나만의 완벽한 독단에 빠져있기에
그 훌륭한 이론과 감미로운 문장으로도
내 기존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선 지금까지 내가 느끼는 이문열을 표현해 보자.

'우리시대의 작가'라 극찬되는 그를
내가 아는 한 문학청년은 이렇게 비판했다.

"그의 작가로서의 재능, 이를테면 문체나 구성,을 훌륭히 덮어주는 건
 다름아닌 바로 그의 너무도 해박한 지식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박일문이나 김미진처럼
무언가 새롭고, 획기적인 시도는 분명히 느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동서고금에 통한 정말 해박한 지식은
실로 내 입을 벌려놓기에 충분했다.

특히 박일문이 서구적인 것에 해박하다면,
이문열은 동양적인 것에는 고금을 가리지 않는 지식이 넘쳤다.

아직 그에게 반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밝히면서
이문열에 대한 얘기는 그치도록 하자.
(그는 너무도 보수적이다)


결혼과 성을 통하면서 내가 고민한 것은
바로 남녀평등에 관한 것이었다.

과거 난 같은 인간이란 류(類)로서 평등함을 근거로
남녀는 모든 면에서 완벽히 평등해야 함을 주장해 왔다.
남녀간의 본원적 차이는 이성을 통한 정신적 숙련으로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믿었었고,
현 시대에 만연한 남-외조, 여-내조를 타파하고자
자랑스런 시대의 반역자, 셔터맨을 꿈꾸기도 했다.

물론 부모님 집에서의 현실은 내 생각과 완전히 달랐지만 말이다.
(사실 지행일치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

그렇지만 이문열은 쇼펜하워나 피히테를 인용하며
소설 전편을 통해 주장했다.

'남녀평등은 색욕에 찌든 남성들이 세상의 모든 여성을 탐하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허울에 불과하다.'

수많은 근거를 통해 딴은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여권신장을 외치며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마치 인심쓰듯 선사하면서
남성은 여성 스스로 옷을 벗기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랐다.

과연 사랑과 성은 구별해 낼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사랑과 성을 칼로 베듯 구분하는 것은
 지난 세기의 이성론자들이 꾸며낸 주관적 환상이 아닐까요?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낡고 불합리한 설교가 아닐까요?

 내가 보기에는 사랑과 성을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불행한 미신인 것 같아.
 프로이트 같은 사람의 과장과 번식기가 아닌데도
 사철 성을 즐기는 인간의 호색근성이 야합하여
 만들어 낸 편의주의적 미신...
 아마도 그 강력한 미신에 대한 지성의 마지막 저항이
 지드의 [좁은 문]일 거요.'

우선 이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정의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무엇을 사랑이라 말하는 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당연히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따위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성과의 사랑에서
성이 없는 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의 해답이야 말로 모든 의문을 해결해 줄 것이다.

인간이 물론 동물이라는 큰 범주안에 들어가긴 하지만
여타 동물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성에 의한 절제일 것이다.

그것을 근거로 난 성이 없는 사랑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것을 정이 아닌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또 순결은 어떠한가?
(비록 이문열은 여성의 순결만 따졌으나 적어도 그에 반하는 나로서는
 남성의 순결 역시 따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따질 것이라면 말이다.
 그 어떤 성인도 남성은 순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적은 없으니...)

이문열은 후반을 통해
정신적 순결만 정숙하면 된다는 요즘의 신세대 풍토를 비웃을 참이었나 보다.

그는 정신적 순결을 편의주의의 산물로 철저히 무시했으며,
근시일내에 바뀔 리 없는 일부일처제에서는
마치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선물인양 표현해 대고 있다.

그렇지만 정신적 순결이 떠난 육체적 순결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난 너가 첫사랑이야' 따위의 가증스럽고, 가식적인
연극이나 하란 말인가?

또한 소위 '몇 명이나 먹었다'란 농담을 건내는 사회에서
남성의 순결은 무시된 채
여성의 순결만이 목숨걸고 지켜야할 미덕이란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이남성주의의 위대한 특권일 게다.


그렇다면 사랑하면 꼭 결혼으로 맺음지어야 하는가?

결국 우리가 고안해 낸 가장 훌륭한 사랑의 귀결이란
결혼밖에 없는 것일까.
사랑은 그저 사랑으로 있으면 안 되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사회의 제도와 도덕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랑은 없는가.

마치 오래된 빚 보증을 떠맡듯
사랑의 댓가로 책임을 져야하고,
그것을 바람직한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나를 많은 혼란에 쌓이게 했던 작품이었다.
덕분에 많은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확고한 남녀평등 의식이 없는 남성이나
여권신장론자들은 결코 읽지 말기를 바라는 책이다.

그 누구보다도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조차
크게 흔들렸으니 말이다. ^^

(이문열 말대로 다시금 남녀평등이 실패한다면~
 푸히~ 남성한테 좋을 게 없잖아~ ^^)

ps. 어떤 성적인 얘기를 게시판에 쓸 때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은
    내 자신이 언어로써 성폭력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혹이라도 뺀질뺀질한 직장 남성들이 하는 농담처럼 느낄까봐 하는 얘기인데
    난 성에 대한 편견을 풀어보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따위 모욕이 있다면 참을 수가 없닷!
    살아버릴꺼얏! (춥군~ --;)

    그렇지만 '똥' 같은 얘기에 대한 편견에는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역시 풀어나갈 숙제이다.

                                                                3상5/476 건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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