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2001-10-12)

오후 4시부터 진행된 전자신문 명예기자 정기총회에 아직까지 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오후 5시 33분.
청소 때문이죠.

평소 그렇게 널널할 때는 청소 한 번 안 하더니
왜 중요한 정기총회까지 빠져가면서 청소를 하고 있냐고 의아해 하실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간단합니다.
지금은 청소를 해야하고, 청소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직 바닥을 쓸거나 빨래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깔끔하게 정돈은 하였습니다.
겨울에 대비하여 전기장판도 마련하였고, 다소 두꺼운 이불도 장만하였지요.

예전 대학로의 我處帝國을 기억하시는 분이시라면 제 청소를 하고 싶어한 의지에 놀라셨을 것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득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청소가 귀찮고 재미 없는 행위가 아니라 제 마음까지 정화되는 그런 느낌을 주었습니다.
아주 아름답게 꾸미는 데에는 별 관심 없습니다만 정돈된 공간을 보고 있노라니 좋긴 좋네요.

청소를 하면서 사무실 이전하기 전 잡동사니를 몰아넣어둔 상자를 보았는데
불과 몇 개월 안된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 저를 회상에 젖게 하였습니다.

구겨진 종이 위에 대충 끄적거려놓은 메모에서도,
다소 훼손된 그 시절 사진들 속에서도
제가 무엇을 행동했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어머니.

곱게 접혀있는 보자기를 보았는데, 그것이 왜 제게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제 일탈적인 행동에 항상 눈물만 흘리시던 제 어머니가 안스러워졌습니다.
자식과 도란도란 TV도 보고, 저녁도 먹고, 이런저런 세상의 이야기도 나누실 나이에
저 같은 아들 낳아 그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시는지...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실 어머니의 외로움을 생각하니 슬퍼졌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 많이 사들고 집에 한 번 가봐야겠는데,
생각해 보니 내 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맛난 거 있으면 항상 자식 먼저 주셨던 내 어머니.

아. 현금을 좋아하군요. --;
현금 들고 가야겠습니다. --+

청소 마저 하고 어서 정기총회에나 가봐야겠습니다.
또 눈총 꽤나 사겠군요. --;
그렇지만 제발 제게 외출할 일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밖에 나가는 건 정말 싫습니다! !_!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454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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