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김밥 (2002-07-11)

작성자  
   achor ( Hit: 1750 Vote: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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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삼각김밥

초복이라고 집에서 삼계탕이나 같이 먹자던 어머니의 전화가 내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실 리 없는 어머니지만
그런 초복이라도 의미를 살려 가족간의 식사를 하고 싶었던 어머니리라.
언제나 그렇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 온다.
훗날 지금 끼쳐드리고 있는 이 막대한 불효를 다 보상하여 드리리라.



특별히 한 일 없었음에도 그런 어머니께 가지 못했다.
밤새 멤버들과 작업을 한 후 영화 한 편 보고 잠들어, 깨어나 20여 권짜리 만화 두 편 봤더니 훌쩍 사라져 버린 하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초복이라던데 나는 여전히 한 끼 먹은 게 없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출출함도 그닥 느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냉장고를 열어본다.

어제 형님이 사놓으신 우유와 쥬스가 들어있다.
우유에 네스퀵이나 타먹어야겠다 생각할 무렵 왠 삼각김밥이 눈에 들어온다.
"이게 언제 여기 있었지? 형님이 사다놓으신 건가?"

가만히 살펴보니 유통기한이 2002년 6월 17일 18시로 적혀있다.
이미 한 달이나 된 김밥의 모습이다.

이번엔 그 위에서 두 달된 달걀도 발견된다.
선명하게 '020518 산란일' 이라고 적혀있는 달걀.
한 달을 마치 하루처럼 살아내는 내가 대견해 보인다.

김밥도, 달걀도, 비타민도...
누군가가 사다놓은 기억은 어렴풋이 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물질은 존재하되 주체가 없다.
나의 기억 속에 물질이 형상화 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꿈꾸듯 물질을 대했을 지도 모른다.



지난 칼사사 번개가 있던 날,
나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내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만들어놓은 결계일 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은 나의 이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지난 7년간 나는 멀리 떨어져 왔으면서도 결국은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를 잡고 있는 건 그가 아니다.
오직 스스로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것, 나는 내가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결국 나는 아직까지도 뜻대로 하지 못했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도, 아무리 스릴있고, 즐거운 유희를 즐긴다 하더라도
나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그 생각들을 지우지 못했다.



그것이 어쩌면 남들이 말하는 바로 그, 것인지도 모르겠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169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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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oob2002-07-18 02:12:19
삼각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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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