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다 (2003-05-22)

작성자  
   achor ( Hit: 1068 Vote: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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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어제는 하루종일 좀 센티멘틀 했다.
아마도 새벽에 우연찮게 보았던 비트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샤워를 해도, 잠을 자고 일어나도 그 다소 무거운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었다.

덕분에 어제 해야만 했던 일들은 모두 펑크가 나 버렸다.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잠을 자거나 vluez와 시덥잖은 일들로 시간을 느긋하게 축내는 게 전부였다.

이제 1시간 여 남겨 두고 있는 지금에 와서
굳이 어제의 그 센티멘틀로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행동했던 일.
이번 학기 유일하게 참가하고 있는 수업에서
오늘은 내가 주제 발표를 해야한다.



언젠가 말했다시피 이 신방과 수업은 무용학과 학생들이 정말 많이 듣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주제 발표를 아주 잘 해냄으로써
그녀들과 특별한 친분관계의 아주 작은 연이라도 마련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는 싶으나
아. 이제 와서 잘 해보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_!

시험 전 날 우등생이 공부 하나도 못했다며 괜한 말을 늘어 놓는 게 아니다.
이제 곧 발표를 해야 하는데 나는 무엇에 대하여 발표를 할 것인지
그 주제조차 아직 정해 놓지 못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주제를 생각하는 대신에 나는 이 따위 잡설이나 적어가고 있다.
문제가 심각하다. --;



여전히 별로 유용할 것도 없는 일들로 밤을 꼬박 지새우고 나니
아침이 오면서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딱 1분 졸았다.
그러다 깜짝 놀라 깨어난다.
이대로 잠들어 버린다면 학교에 가지 못할 것이고,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그 교수는 내게 F 학점을 주고 말 것이다.
그러면 나는 졸업시험 합격 여부와는 상관 없이, 지난 학기 그토록 고생했던 것과도 상관 없이
다시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내 인생은 한 학기 더 늦어질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근처 편의점으로 나섰다.
잠을 좀 쫒으려는 의도도 있었거니와 아침 공기도 한 번 맡아보고 싶었다.
게다가 물이 떨어져서 내내 갈증을 참아오고 있던 터였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섰더니 아침 공기가 조금 서늘하다.
집 앞에서 스친 여자 아이 둘은 무슨 일이 있다고 그렇게 일찍 길을 나섰을까.
아침부터 분주한 사람들의 눈빛을 바라본다.



귀찮다.
무엇이든 하기 싫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내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와 별 다를 것 없을 내 아버지는 어떻게 그리 오랜 시간을 버텨오셨을까.
한 아이를 낳고, 그가 다 클 때까지 그 긴 시간을
이 지겹고도 귀찮은 세상의 압박 속에서 버텨낼 수 있었을까.

아. 귀찮다.
늘어가는 건 바퀴벌레 개체수와 하루소비 담배량밖에 없는 듯 하다.
샤워나 하고 학교나 가야겠다.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854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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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2003-05-22 15:07:19
결국 학교 가는 대신에 잠을 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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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