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사무실을 이전한 지 한 달이 흘렀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아주 깊이 리니지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한 달의 기억 속에 리니지를 제외하면 남아있는 게 없다.
지난 일요일 새벽 2시.
갑작스레 야혼이 찾아왔었다.
나는 몹시 그가 반가웠다.
그렇지 않아도 술 한 잔 하고 싶었었다.
그럼에도 토요일, 정오 무렵 잠들어 깨어나 보니 밤이었는 데다가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곱씹어 보며 누구와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술을 갈망하면서도 그냥 참고 있었던 터였다.
우리는 길 건너 편의점에 가서 소주 세 병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들고 와서
오랜만에 술 한 잔 하였다.
야혼은 이제 내가 알 수 없는 컴퓨터 이야기들을 아주 자신있게 이야기 하였다.
그는 그간 정말 열심히 했다.
언젠가는 그와 컴퓨터에 관하여 이야기함에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이제 나는 그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있었다.
정체는 정체가 아니라 퇴보이다.
나는 그의 열정이 부러웠다.
그는 꿈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고되게 공부한 후 친구들과 먹는 야식의 맛을 알고 있었고,
피곤하여 흘리는 코피의 느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건
광전사의 도끼를 착용하면 헤이스트가 무한으로 지속된다는 것과
무기를 업그레이드할 때 +5 이상부터는 축복 받은 데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나는 그의 열정이 부러우면서도 내심
그의 옛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술과 인간의 정신력, 그리고 무언가 포기할 줄 아는 힘을 가르쳐 줬었다.
또한 굴하지 않는 의리도.
그는 이제 그런 게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일요일 아침, 깨어나 해장을 한 후 서점으로 향했다.
나는 한 권의 책도 사지 않았는데, 그는 엄청난 양의 책을 샀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천천히 한 발자욱씩.
그렇게 다가서고 있다.
나는 그런 그가 자랑스럽다.
물론 개인적으론 옛 모습이 더욱 그립지만.
며칠 전 헤어진 후부터.
나는 리니지를 거의 하지 않는다.
리니지는 내게 있어서 거기까지다.
두 달을 지속했던 머드도 있건만 리니지는 겨우 한 달도 나를 매료시키지 못했다.
리니지를 벗어나 내 삶을 돌아보며
다시금 조금씩 추려보기 시작한다.
다음 학기 수강신청을 하고,
사무실 임대료를 내며,
밀려있던 일들을 나열해 본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을 알아본다.
그러자 나에게도 조금 열정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괜찮나 보다.
괜찮은 수입을 안겨주겠다는 많은 일거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무선 인터넷 관련 회사에 다니던가
아니면 옛 경찰청 유지보수 작업을 할까 생각한다.
그래도 한 달의 휴식 동안 내가 완전히 잊혀져 버린 건 아니라는 게 안도가 된다.
아직은 내가 일을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나를 받아줄 곳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고
자신감을 갖는다.
구체적인 방향은 아직 떠오르지 않지만
나는 다음 한 학기를 멋지게 기록해 내고 싶다.
9시면 사람들과 직장에 출근했다가 화, 수요일 저녁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곤,
밤에는 다시 친구들과 아처웹스.를 꾸려나간다.
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하고,
듬뿍 땀 흘려 운동한 후 시원하게 샤워도 할 생각.
자상하게 각설탕 넣어 마시라고 적혀있는 커피도 가끔을 마실 것이고,
때론 여전히 친구들과 진탕 술에 취하기도 할 게다.
그러면서 나는 마치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 영화처럼.
어디에 휩쓸리지 않는 회색 빛 조명을 유지할 것이다.
돈을 모아 중고차도 한 대 살 것이고,
아버지 골프채를 뽀려와서 다음 학기에 듣는 골프도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곧 전기밥솥과 냉장고도 하나 살 생각이고,
내 손으로 맛있는 요징어요리도 해먹어 볼 계획이다.
아. 나에게도 꿈이 있다.
멋진 한 학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 achor WEbs.a 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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