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기에 PC의 판매 부진은 리눅스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분명 둘 사이에 확실한 연결 고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PC 시장의 침체와 마이크로소프트(MS) 사이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갈 것이다.
현재 PC 시장은 굉장한 시련을 겪고 있다. PC 시장의 침체는 현재로선 단기적인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이런 현상이 지속될 때, MS에는 굉장한 악영향이, 반대로 리눅스 시장에는 매우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PC 시장이 극심한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미 작년 말부터 PC 판매상들은 컴퓨터 하드웨어의 가격을 경쟁적으로 내리기 시작했고 이것은 분명 시장 전체에 불길한 현상이었다.
일단 작년 11월 30일에 컴퓨터 제조업체인 게이트웨이(Gateway)의 분기 내 판매 수익은 5억 달러나 내려앉았고, 회사의 주가는 35%가 추락했다. 이렇게 PC 시장에 불길한 조짐이 일자, 투자자들은 다른 PC 업체인 컴팩(Compaq)이나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로부터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는 맥킨토시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12월 초, 애플(Apple)은 스티브 잡스가 CEO로 돌아온 이후 첫번째 손실을 기록했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한다. 혹자는 이것이 앞으로 PC 시장 전체에 본격화될 ‘대공황’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히, PC 시장이 이제 전체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선 것만은 사실인 듯 싶다.
지난 수년간 PC 시장은 두 자리 수의 성장세를 보여왔다. 이제는 이런 기록적인 성장에 한계가 온 셈이다. 즉, 지금부터 PC 시장은 성장세를 접고, 좋은 말로, ‘안정 국면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자신들이 ‘안정세’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나, 앞으로 일년 안에 다시 판매 지수가 반등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예상이 맞는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PC 시장이 ‘한 동안이나마’ 침체기를 맞은 상황에서 어떻게 리눅스가, MS의 윈도를 제치고,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걸까?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리눅스의 주요 시장은 데스크 탑이 아닌, 서버라는 사실이다. 현재 리눅스의 서버 시장은 일년간 20%씩 성장할 정도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 오고 있다. 그에 따라 시장 점유율도 계속 높아져 이제는 새로 증설되는 서버의 25%가 리눅스로 채워지고 있다.
이렇게 서버 시장에서만 활약을 보이던 리눅스가 이제 어떻게 MS의 윈도가 지배하고 있는 데스크 탑 시장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일까?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과거 PC 운영체계의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1980년 후반, 애플은 뛰어난 성능의 하드웨어와 그래픽 사용자 환경으로 데스크 탑 시장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이미 애플은 쉽고 직관적인 사용자 환경, 그리고 혁신적인 인쇄 시스템으로 교육 시장과 그래픽 전문 시장을 말 그대로 ‘석권’하고 있었다. 애플이 선점했던 이 두 가지 시장은 맥킨토시의 꾸준한 판매를 보장해 주었고, 데스크 탑 OS로서 안정적인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바로 이 교육과 그래픽 시장의 데스크 탑 컴퓨터들에 ‘연결성’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즉 대부분의 데스크 탑 컴퓨터에 서버와 네트웍 기능이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교육과 그래픽 분야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서버를 설치하고 PC 간의 네트워킹을 늘려갔다.
애플은 이런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맥킨토시 기반의 서버와 네트웍 기능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 너무 비쌌을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 이류에 지나지 않았다. 맥킨토시의 유려한 운영체계에 비한다면 애플의 네트웍 기능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부가 장치에 불과했다.
결국, 이때부터 많은 수의 애플 소비자들은 맥킨토시를 버리고 유닉스와 도스 기반의 서버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물론 맥킨토시와 다른 시스템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매일같이 계속되는 네트웍 관리를 위해서는 맥킨토시 시스템을 ‘버리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이에 비해 윈도는 네트웍 호환성이 뛰어났다. 게다가, 윈도의 사용자 환경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그래픽과 인쇄 기능에 있어서도 결코 맥킨토시에 뒤지지 않는 환경을 갖게 됐다. 결국 MS의 윈도 기반 PC 시스템은 교육과 그래픽, 애플의 두 가지 주요 시장을 크게 잠식해 들어갔다.
지난 약 5년간 애플은 이런 MS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미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MS 측에 빼앗긴 PC 시장을 되찾기는, 말 그대로 중과부적이었다. 오늘날 상황은 완전히 역전돼, 요즘 새로 개발되는 교육과 그래픽 소프트웨어들은 항상 윈도용으로 먼저 출시되고 맥킨토시 플랫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번 네트웍과 서버 경쟁에서 밀려나 버린 애플은 다시 기사회생하지 못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리눅스와 윈도 PC 시장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이 설명하길, 데스크 탑 PC의 판매 성장이 멈춤에 따라 이제 PC 제조업도 자동차나 TV처럼 이미 안정세에 접어든 다른 제조업과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즉, 마진이 낮은 품목에서 마진이 높은 품목으로 판매 종목을 바꾼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컴퓨터 업계는 이제 마진율이 낮은 일반 데스크 탑 하드웨어가 아닌, 마진율이 높은 서버나 네트웍 제품을 택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현재 서버/네트웍 시장에서 득세하고 있는 쪽은 바로 리눅스다. 그렇다면 MS가 장악하고 있는 데스크 탑 PC 시장은 이제, 뜻하지 않게, 리눅스 서버와 경쟁하게 된 셈이다.
리눅스 데스크 탑은 앞으로 리눅스 서버와의 연계를 통해 더욱 세력을 확장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기업 내에 점점 더 많은 리눅스 서버가 들어오게 되면 시스템 관리자들은 분명 리눅스 데스크 탑 도입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선적으로 경제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리눅스 서버에 리눅스 데스크 탑이라면 네트웍 시스템을 관리하기가 더할 나위 없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리눅스 데스크 탑의 더욱 큰 강점은 바로 데스크 탑 PC의 제작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데 있다. 제품의 단가나 낮아지면 판매 마진이 커지거나 가격 경쟁력 상승을 불러올 수 있게 되고 이는 PC 제조업체들에게 굉장한 득이 된다.
애플은 이미 이런 식으로 새로운 맥 OS를 오픈 소스를 사용해 개발한 바 있다. 오픈 소스를 통해 개발된 맥 OS X과 마찬가지로, 다른 플랫폼에도 리눅스 소스가 혁신적이고 유려한 모습으로 도입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MS는 PC 시장의 침체와 어떤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PC 시장의 침체로 가장 커다란 피해를 보는 쪽은 바로 MS가 될 것이다.
PC 시장이 이런 침체기를 겪는 상황에서 제조업체들은 틀림없이 MS 측에 윈도나 오피스 소프트웨어의 라이센스 금액을 낮춰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PC 제조업체들은 MS가 판매되는 PC마다 부과하는 ‘세금’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MS가 PC 제조업체들의 요구에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계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가격을 낮춰 제품을 더 많이 팔던가, 제품을 더 조금 파는 대신 마진을 높이든가 해야 할 텐데, 양쪽 모두 전체적인 수익 감소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MS의 수익 행진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믿던 투자가들은 서서히 생각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MS 측의 주가가 이렇게 계속 하락하게 되면, 그간 돈과 스톡 옵션 때문에 MS에 충성을 다 하던 핵심 기술 인력들도 생각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MS 주식으로 인한 장미빛 미래를 보장 받지 못한다면, 그간 MS가 간신히 붙들어 매두던 최고의 두뇌들은 언제든지 박차고 다른 자리로 옮겨 갈 수 있다. 현재 미 법무부와 불신임 투쟁을 벌이고, 차세대 .Net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런 중요한 시점에 MS는 험난한 장애물들을 만나게 된 셈이다.
반면, 리눅스는 이와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다. 리눅스의 개발자들은 처음부터 거액의 돈이나 스톡 옵션 따윈 바라지 않았다. 이들은 연명할 수 있는 음식과 개발을 유지해 줄 전기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할 것이다.
과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경제가 한참 침체기에 머물렀을 때, 사용자의 재량에 따라 사용료를 지불하는 쉐어웨어(Shareware)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용 소프트웨어에 투자할 돈이 없었고, 이런 시기를 틈타 쉐어웨어가 시장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현재의 PC 시장 상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PC 시장 경제가 악화되면 제조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되도록 적게 지불할 수 있는 운영체계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란 뜻이다.
PC 하드웨어의 판매 부진이 곧바로 리눅스 데스크 탑의 득세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부터 PC 제조업체들은 지금껏 유지되던 MS와의 공조 체제를 ‘재고’하고, 수익성이 높은 서버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결국 맥킨토시와 윈도가 지나왔던 과거사가, 다시 윈도와 리눅스 시장에 재현됨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