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19 소나기, 흐림
23:45. 대림역. 5분 후면 열차가 온다.
오늘은 소나기가 와서 그런지 참 평온하다.
휴지로 땀을 닦고 음료수 한 잔 마셨더니 시원하다.
나는 서울의 야경이 좋다. 내 20대 후반을 꿈꾼다.
다이어리에 남아있는 옛 자취들을 보며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데
이상스레 먼 얘기처럼 느껴진다.
할 일이 많다. 홍정욱이 말하지 않았던가.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다고.
간간히 시원스레 소나기가 와서 그런지
세상이 참 조용했던 날이었다.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게 좋아졌다.
시끄러운 바보다 옛 전통찻집이 좋아진 걸 봐도 그렇다.
오랜만에 지하철 막차로 출근했던 것 같다.
몇 달 전에는 항상 지하철 막차 놓칠까봐 노심초사 하기도 했었고,
드문 지상의 지하철역인 대림역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도 참 좋아했었는데...
막차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옛 다이어리를 보았다.
짧지만 매일매일 사건만 간단히 적어둔 기록들이
2월 중순을 끝으로 사라져 있었다.
지난 연말 한창 홈페이지에 빠져있던 기록도,
또 매일 어떤 이를 만나 어디서 얼만큼 술을 마셨다는 기록도
눈에 들어오니 환히 기억난다.
아하, 참, 그 땐 그랬지.
남아있는 기록이 고작해야 작년 10월 중순부터이니까
아무리 세어봐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다가온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어떤 다른 세상의 내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학원 강사를 하고 있던 그 무렵,
나는 대개 여자들을 만나 술을 마시곤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단절. 사생활의 공간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문득 그토록 기다려왔던 새천년의 여름이
아무런 기억 없이 다 사라져버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처서, 작년 여름이 가고 있을 무렵 느꼈던 사랑이야기가 떠올랐다.
끼익끽끽끽끽끽끽, 끼익끽끽끽끽끽끽.
666의 amokk을 들으며, Rialto의 Summer's over MV를 보며
느꼈던 아쉬움을 생각하며 살짝 웃음지었다.
내게도 그런 사랑을 갈구했던 시절이 있었더랬지.
나는 이제 내 20대 후반을 생각한다.
과거, 향수, 감상은 충분히 생각했다.
나는 당당하게 내 잔치 끝난 서른을 맞이하고 싶다.
여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이 가고 있다.
어쩐지 여름처럼 느껴지는 내 젊음도
이제는 다른 세상의 내 이야기처럼 느껴져 온다.
- achor Webs. ac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