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1: 나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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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Vote: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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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눈 앞에서 피를 본 적이 있어.



한 고등학생이 어디서 싸웠는지

얼굴에 온통 피범벅이 되어 절둑거리고 있더라구.

상상 속에서 존재하던 그런 피와는 달리

오랜만에 실제로 보는 피는 정말 빨갛더구나.



젊었을 적에는 피의 환상이 조금 있었던 것도 같아.

무언가 때려부셔야 했고, 파괴해야만 했으며, 몸으로 무조건 부딪치는 게 좋았으니까.

그런 게 열정이라고 착각했었나 봐.



그렇지만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르게 느낄 수 있게 됐어.



물론 무엇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야.

20대 초반의 열정과 20대 중반의 도피 중

어느 것에 더 박수를 보낼지 내 미래를 장담하지는 못해.



그렇지만 피에 대한 환상은 이제 나는 갖지 않아.

내 주먹 속에 꽉 쥐어진 날카로운 칼로 누군가를 찌르는 상상을 이젠 하지 않아.



중학교 시절에는 어른들을 무시했었어.

우둔한 어른들 보다 내가 더 투표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폭력과 뇌물로 물들어져 있었던 내 중학교 시절의 국회의원 선거였으니까.



그러나 역시 어렸어.

무식하면 용감하고, 멍청했기에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뿐야.

경험이나 체험없이 여기저기 들은 헛지식으로 떠들기엔 복잡한 일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는 걸 실감해 나가고 있어.



내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 어떤 생각이라도

그 시절에 그런 생각 안 해본 사람 그 누구라도 없다는 걸 느끼게 돼.



나는 이제 피를 예찬하지 않아.



- achor WEbs. achor



2000.9.25 03:17 [1]



쓰고 나서 보니 너무 공격적인 듯 하여 사족을 담.



설마,

네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쩌다 답변글이 되었을 뿐야.

그냥 내 이야기고, 앞으론 이런 사족 안 달아도 되겠지? --;



노파심이자 괜한 걱정이었음. ^^;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923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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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2/27/2025 09:5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