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1: 초인 술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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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목을 두면서 세상을 느껴. --;

오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우스개 정도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오목은 그렇게 비웃을만큼 가벼운 게 아니야.



나는 아직 오목을 머리로 두고 있어.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두고 있지만

정말 고수들은 머리로 두질 않는대.

돌들의 형상을 보면 어디다 둬야하는지 느낌이 온대.

그래서 나는 오목을 몇 시간 두고 나면 아주 피로해진단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곳에서의 점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사람들은 그 사소한 숫자놀음에 상당히 연연하게 돼.

물론 나 역시 그 속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다고 말하진 못하겠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

갖은 술책과 비겁한 승부욕들이 뒤범벅이 되어

가끔은 여러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도 만든단다.



그럴 때면 나는 그저 바라봐주는 편이야.

이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교육을 받고 자라왔기에

이런 성격을 지니게 된 걸까, 한 번씩 생각해 보게 돼.

그래도 오목을 꽤 두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사회의 낙오자는 아닐 거라고 믿는데,

그렇다면 이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들 중

상당한 사람들이 그런 불량한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해.

나는 골방에서 고시준비만 한 판사에 대해 아직 회의적이야.



그곳은 내가 본 최고의 수준이야.

어린 시절 오목으로 인해 오만했던 적도 있었어.

동네에서는 최강이었거든. --;

그곳은 학창시절 천리안 정도의 수준이 아니야.

명함도 못 내미는 내 모습에서 세상이 참 넓다는 것도 실감한단다.



내 전적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점수 수준이거나 하수에게는 꽤나 강한 편이야.

그렇지만 고수와의 대전에서는 절대적으로 열세야.

그래서 정말 고수의 길은 멀었구나, 생각하지.



아주 오랜만에 회귀했던 거야.

한 10개월쯤 되었나?

예전에도 오목에 빠져있던 적이 있거든.

비주기적으로 가끔씩 찾아드는 열병이야. 오목의 열병. 트리스탄.



한때는 순간적인 열정이 강한 편이었던 내 자신이 좋았어.

뭐든 짧고 강하게 좋아하는 것 같았거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짧은 시간동안 확 빠져버리는 게 좋았어.



그러나 이제는 너무 오목에 빠지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곤 한단다.

할 일들이 남겨져 있잖아. 취미는 여분의 시간에 해야해.

물론 잘 되지야 않지. 이미 지난 밤 꼬박 오목으로 지새고 지금은 새벽 6시.



원치 않는 몰입을 경계해.

그리고 나는 찰나의 머릿싸움이 펼쳐지는 오목을

보다 여유롭고, 보다 지루한 바둑보다 좋아해.

오목의 그 한시도 풀 수 없는 긴박감과 긴장감이 때로는 좋아.

한 번의 실수가 파멸를 부르는...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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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8답변     Re 1: daybreak가... achor 200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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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3/07/2025 04:3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