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성명  
   achor ( Vote: 60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잡담

1.

어제는 이틀동안 잠을 자지 않았기에

무척이나 피곤했었다.

그 날은 이번 중간고사의 마지막 시험이 있는 날이기도 했는데,

새벽 무렵 할당 작업을 대충 마무리 지은 후에

나는 시험 공부를 하기 시작했던 게다.



물론 애초에 시험공부를 할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잠을 자게 되면 얼마 남지 않았던 그 마지막 시험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았고,

또 아무리 늦게 자는 친구들이라도 다들 잠들었던 아침 시간이었으니

홀로 스타하는 것도 별 재미를 못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시험공부는 솔솔한 재미를 내게 주기 시작했다.

나는 학창시절에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고,

특히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시험공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학교와 나와의 거리가 상당한 편이었다.



그런데 시험공부가 괜찮은 재미를 주었던 것이다.

인터넷마케팅론,이라는 과목은

안 그래도 achor WEbs.를 통해 내가 실제로 부딪치고 있는 문제들을

학술적으로 다뤄주는 유용한 학문이었기에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어느 선배가 남겨놓은 회사 경영의 방침을 이야기 듣는, 그런 느낌이었다.



게다가 웹문서로 강의되는 수업 방식도

그간 컴퓨터를 공부해 오면서 접했던 익숙함을 주기도 했었고.



어쨌든 그리하여 나는 10여 분 늦게 시험에 참석하여 시험을 보았는데,

놀라지 마라,

내가 4절지 정도의 답안지 앞, 뒷면을 꽉 채워 답을 달았던 게다. ^^v



그간 항상 죄.송.합.니.다. 다섯 글자로 시험지를 채우고

언제나 가장 먼저 시험장을 빠져나와 모두의 찬사를 받았던 나 답지 않게

이번에 나는 시험이 끝나는 시간까지 버텨내기도 했었다.



그래서 피곤함은 여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날 아주 기분이 좋았었다.

여전히 성적은 잘 안 나올 지 모른다.

강의에서 정해놓은 답변과 내 경험에서 얻는 답변이 일치하지 않을 확률은

아주 높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를 테스트 하려 했을 때

그에 적절하게 대응해 줬다는 것이 나를 다소 우쭐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긴 답안지를 낸 것은

초,중,고,대학교를 통털어 처음이다.



2.

그 날은 학교 수업도 있는 날이었는데,

내 몇 안 되는 학교 친구, 용팔이가 이벤트를 몇 개 준비해 놔서

나는 내심 수업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용팔은 교내에서 열리는 축구대회, 한 팀의 감독을 맡아

나이 어린 후배들을 지휘하고 있었고,

두 번째로 며칠 전 함께 경제학 수업을 듣는 99학번 여자 후배를 뒤따라가

반 강제적으로 (하필이면 70년대 풍) 빵집에서 빵을 먹었었고,

지난 월요일에는 같이 점심약속을 잡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월요일 점심약속에 용팔은 바람을 맞았던 것이고.



나는 우선 시험이 끝난 직후 운동장으로 가서

용팔이 지휘하고 있던 축구팀의 시합을 관람했고,

그리고 시합을 승부차기 끝에 승리로 장식한 것을 확인한 후

수업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 99학번 여자 후배를

단발, 혹은 붕어로 부르고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단발을 하였던 그 후배는 딱 귀여운 스타일이었는데,

학기 초반부터 용팔이 눈독을 들이더니만

기어이 내가 학교에 안 나가던 사이 일을 치뤘던 게다.



드디어 그 단발이 강의실로 들어섰고,

나는 앞으로 펼쳐질 이벤트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나 나의 작은 행복을 깨는 전화 한 통. --;

팀장님이었다.

경찰청 프로젝트가 다음 날 1차 검사를 맡게 되었는데,

업무가 급하다고 수업 제끼고 어서 오라는 전화. !_!



그리하여 용팔이 마련한 그 이벤트에

나는 군침만 흘리다 다시 경찰청으로. 주르륵. ㅠㅠ



3.

그 날은 조금 일찍 퇴근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이틀 간 밤을 새어 일해놨기에

내가 맡은 작업은 대부분 처리되어 있었고,

또 더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나는 아주 피곤하였었다.



신림동에 도착하여 바로 잠들어

새벽 1시, 친구의 전화를 받고 깨어났다.



친구는 우리 단골 술집으로 어서 나오라고 했다.

그렇지만 할 일이 있어 야혼과 스타 한 판 하고, --+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 술집으로 갔더니,



한 병에 45만원이나 하는 조니워커블루라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더니만 다시 이 인간들이 미쳤나보다. --;

물론 나야 이미 있는 술 마시기만 하면 됐지만

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굶는 게 일상이었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호화찬란해졌던가. --;



블루라벨 두 병에 안주 등을 합쳐 총 100여 만원의 엄청난 하루 술값을 치룬 후

맥주는 내가 쏴줬다. --+



그리고 다시 신림.

많은 일이 있던 어버이날이었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70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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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8답변     Re 1: 아.르.바.이.트...!!! achor 200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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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3/07/2025 04:36:22